[북한·미국 첫 외무회담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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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8일 방콕에서 열린 사상 첫 북.미 외무장관 회담은 양국간 최초의 각료급 회담으로 양국관계 정상화에 큰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백남순(白南淳)외무상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이날 회담에서 북.미간 최대 현안인 북한의 미사일 문제와 북.미 고위급 회담, 테러지원국 해제문제 등에 대해 쌍방간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장관은 그러나 협상채널과 회담방식 등 두나라간 관계진전에 필요한 '큰 틀' 을 짜는데 주력하는 등 구체적인 합의도출 보다 만남 자체에 의미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 고위급 회담=두 장관은 일단 북.미관계 개선과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이행에 대한 양국 의지를 확인했다.

양측은 이번 회담에서 고위급 회담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벌여 상당부분 의견접근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앞으로 양측 관계개선은 조만간 열릴 고위급 회담에서 상당부분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당초 고위급 회담을 통해 관계개선 구도를 잡는다는 계획을 세우고 김용순(金容淳)아태평화위원장이나 강석주(姜錫柱)외무성 제1부상의 워싱턴 방문을 추진했다.

그러나 북한 미사일 문제 등 현안에 진전이 없자 미국은 계획을 수정, 고위급 회담 개최와 미사일 문제,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를 별도 회담을 통해 동시 진행시켰다.

그러던 중 지난 10일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미사일회담에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는 등 개별 회담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다시 고위급 회담에 우선 순위를 두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한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워싱턴에 고위급 인사를 보내겠다" 고 밝혀 이후 미국이 고위급 회담 성사에 주력하게 됐다는 게 한 외교소식통의 전언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미 고위급 회담 대표 보다 상위 레벨인 외무장관이 만났기 때문에 고위급 회담 성사가 더욱 수월해졌다" 고 분석했다.

◇ 미사일=북.미관계의 '뇌관' 인 북한 미사일 문제에 대해선 양국이 '신경전' 을 계속했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북한의 '조건부 미사일 개발 포기' 설의 진위(眞僞)여부를 집중 탐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白외무상은 "평화적 목적을 위해 위성(미사일)을 개발한다" 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 관계자는 "북측이 체제유지와 경제회생을 위해 겨냥한 '미사일 카드' 를 손쉽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고 설명했다.

북.미는 아직 미사일개발 문제에 뚜렷한 접점(接點)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북.미는 당분간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선언(모라토리엄) 등 기존의 협상성과를 바탕으로 관계개선의 속도를 조절하면서 '포괄적 타결' 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미간 미사일 해법은 '페리 프로세스' 를 바탕으로 한 '당근과 채찍' 의 논리 속에서 진행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현안인 북한 미사일 수출문제의 경우 수출 포기에 대한 '금전보상' 대신 '대북 경제제재 추가 해제' 등 간접 지원형태로 가닥이 잡힐 가능성이 크다.

◇ 테러지원 해제 등=이번 회담에서 白외무상이 올브라이트 장관에게 "미 행정부가 정치적 결단을 내려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조속히 해제해 달라" 고 강력히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올브라이트 장관은 "해제를 위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어렵다" 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 하는 등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미측이 상당히 관심을 기울여 왔던 북.미 연락사무소 설치문제도 북한이 "아직까진 시기상조" 라는 입장을 거듭 밝혀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콕=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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