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현대전자 소송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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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현대중공업은 1997년 캐나다 은행인 CIBC에 빚 보증을 선 2억2백72만달러(6월말 현재.2천2백59억원)를 현대전자가 갚을 수 있는 상황인 데도 '여유가 있는 계열사' 가 떠안아 달라는 식의 요구에 못마땅해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현대전자에 여러 차례 독촉했는 데도 이를 갚지 않아 이미지가 훼손되는 것을 감수하면서 소송을 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 관계자는 "붙은 살을 떼려면 피가 날 수밖에 없다" 며 "사실상 계열분리를 위한 사전 진통으로 보아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 그룹에 대한 불만 커=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그동안 그룹의 돈줄 역할을 했는데 이사회 중심의 투명경영이 불가피해 고리를 끊어야 할 처지" 라며 "지난주부터 사외이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세차례 이사회를 연 뒤 소송을 내기로 결정했다" 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재무상태가 탄탄하다는 이유로 6월말 현재 현대건설(3천1백억원).현대전자(2천2백억원).현대강관(3백10억원).현대상선(47억원) 등 그룹 계열사의 빚보증이 1조원이 넘는다.

또 계열사가 유상증자를 하면 현대중공업이 실권주를 인수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조선업의 호황으로 월평균 1억달러의 현금이 들어올 정도로 유동성이 좋은 편이다.

현대중공업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2003년으로 예정한 계열분리가 앞당겨질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소송을 벌이는 판에 계열분리를 늦출 이유가 없다" 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재산분할 과정에서 정몽준 고문(국회의원)몫으로 분리돼 그동안 鄭고문이 최대주주(8.06%)였는데 지난 5월말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지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정몽헌 회장 계열의 현대상선이 12.46%를 확보해 긴장하고 있던 터였다.

형제간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 현대중공업의 계열분리가 어렵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26일 기자와 만난 정몽준 고문은 중공업 계열분리 문제를 묻자 "그런 얘기는 하지 맙시다" 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 여러 차례 조정도 실패=현대중공업은 현대전자에 주식대지급 반환소송이나 손해배상 청구를 강행할 방침이다.

현대중공업은 소송을 통해 대내외적으로 그룹과 선을 그어놓음으로써 현대중공업의 주가 상승도 노린다는 전략이 깔려 있다. 현대중공업의 주가가 오르지 않는 것은 현대건설 등에 대한 지금 지원이 한 요인이라는 분석에서다.

현대전자가 여러 차례에 걸친 조정에서 일부 손실을 보전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는 데도 소송을 포기하지 않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말 상장할 때 주식가치가 주당 5만2천원으로 평가됐으나 부실 계열사 지원 등으로 현재 1만7천~1만8천원선을 맴돌고 있다.

김시래.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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