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 특허 심사 너무 오래 걸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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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정부가 국가 핵심 기술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의무적으로 정부 승인을 받도록 하는 등 강도 높은 기술 유출 방지 대책을 마련한다고 한다. 국가 핵심기술의 개발과 관리에 국가 미래가 달려있다는 점에서 지적재산권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이 조치로 발명자의 권리가 침해돼서는 곤란하므로 발명자를 보호할 방안도 같이 강구돼야 할 것이다.

지적재산권의 3대 강국이라 불리는 미국.유럽연합.일본은 물론 최근에는 중국까지도 정부 차원에서 전담부서를 운영하는 등 지적재산권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핵심 기술의 경우 분쟁의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소송을 포함해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핵심 기술의 해외 유출 방지 대책과 함께 필요한 것이 지적재산권의 관리시스템 정비다. 특히 지적재산권이 특허를 통해 보장되는 권리라는 것을 감안할 때 특허 심의기간의 단축과 전문 심사인력 확보는 더 늦출 수 없는 중요한 과제다.

이런 관점에서 평균 22개월이 소요되는 특허심사 기간을 줄일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제안한다.

현재 특허 획득을 결정하는 특허심판원은 총 13개 심판부로 구성돼 있는데 이 중 의장.상표 사건은 6개 부서가 담당하고 특허.실용신안은 7개 부서가 담당한다. 이에 반해 총 4국으로 구성된 특허심사국의 경우 특허.실용신안을 3개국에서 담당하고 나머지 1개국에서 의장.상표출원 심사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3배 정도의 업무가 예상되는 특허.실용신안의 심판원 조직을 늘려 균형을 맞춰야 하는 것은 당연하며 이를 통해 특허심판 기간을 단축하고 다른 사건과 균형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날로 늘어가는 특허출원 신청에 맞춰 전문적인 심사관을 확충하는 체계적인 수급제도가 뒷받침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특허청은 임시방편적인 특채로 인력을 채워왔다. 그러나 특채하면서 심사업무에 가장 적합할 변리사가 심사관으로 채용되려면 4년의 경력을 요구하는 것도 문제다. 그 정도 경력을 갖춘 변리사들은 이미 업계에서 어느 정도 자리잡은 상태이기 때문에 지원자가 거의 없는 것이 당연하다.

특채 제도의 문제점은 2003년 특허청 국정감사 결과 1994년부터 특채한 박사.기술사 중심의 215명 중 32%인 69명이 퇴직했으며 이들 가운데 69%인 48명은 변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퇴직한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비효율적이고 임시방편적인 수급제도보다는 공무원 직렬에 특허직을 신설해 시험을 통해 필요한 인원을 충원하는 방법이 바람직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특허출원 건수에서 세계 4~5위 수준이며, 해가 갈수록 그 수가 증가하고 있다. 아울러 특허를 둘러싼 국내외 분쟁 또한 계속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정적인 심사인력 확보와 더불어 지적재산권의 세계화를 위한 관련 조직과 제도의 정비는 매우 시급한 국가적 과제다.

이와 더불어 우리 국민과 기업들이 지적재산권의 중요성과 그 경제적 효과에 대해 보다 높은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홍보와 지적재산권의 근간이라 할 이공계 전공자들에게 사회적으로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도 꼭 필요하다.

고영회 행정개혁시민연합 과학기술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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