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증자 참여용 대출 갚지 않아도 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1998년 대한종금이 퇴출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벌인 '꺾기 증자' 에 참여했던 기업에 법원이 "빌린 돈을 갚지않아도 된다" 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지법 민사합의26부(재판장 심창섭 부장판사)는 24일 대한종금으로부터 3백억원을 빌려 이 회사 유상증자 대금으로 납입했던 ㈜부영이 대한종금 파산관재인을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 확인청구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1억달러를 투자한 통일그룹을 비롯해 운송업체 S사, 건설사인 P사 등 당시 대한종금의 편법증자에 참여했던 업체들이 낸 소송중 처음으로 내려진 것이다.

특히 대한종금 돈을 빌려 다시 대한종금의 주식을 사는 꺾기 증자에 참여했다가 증자금만 날리고 부채는 고스란히 떠안을 위기에 처한 곳이 20여개 기업에 2천억원대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대한종금에 3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을 넣어 예금을 대지급해준 예금보험공사측은 "금융기관이 망하면 자본금은 한푼도 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편법증자에 참여?기업들은 당연히 책임을 져야한다" 며 반발하고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대한종금이 원고에게 대출해주면서 영업정지처분을 받을 경우 주식을 되사주기로 약정한 사실이 인정된다" 며 "피고측은 이 약정은 주주평등 원칙에 위배돼 무효라고 주장하지만, 주식재매수 약정이 없었다면 원고가 증자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인 만큼 인정할 수 없다" 고 밝혔다.

대한종금은 97년 12월 유동성 부족으로 금감위로부터 영업정지처분을 받자 이듬해 2월 3천억원의 유상증자를 통해 BIS비율을 높이겠다는 경영정상화계획을 제출하고 영업을 재개했다.

하지만 기존 주주들이 증자에 참여하기를 꺼리자 '만약 문제가 생기면 대출금과 출자금을 상계 처리해주겠다' 는 이면각서를 써주고 20여개 기업들에 2천억원 이상을 대출, 증자에 참여토록 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대한종금이 파산한 후 예금보험공사측이 증자 참여기업들에 대출금을 갚으라고 요구하자 ㈜부영이 소송을 낸 것이다.

최현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