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학] 시인 오세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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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고독할 때/내 육신은 무한에 떠 있는 섬/살갗에서 이는/밀물과 썰물의 적막한/호흡 소리를 듣는다.//영원이 어디 따로 있던가/들이마시고 내쉬는/목숨의 찰나에 있던 것을, /오늘 나 먼 수평선을 향해/긴 휘파람 소리를/내본다."

시인 오세영(58)씨는 겨울 한철 해마다 절로 들어간다.

'영원' 을 언어로 붙잡기 위해 15년째 '동안거' (冬安居 : 겨울철 스님들이 두문불출 수행하는 일)해오고 있는 오씨가 '문학사상' 7월호부터 '산사(山寺)시편' 연재에 들어갔다.

1968년 등단한 오씨는 '무명연시' , '사랑의 저쪽' , '벼랑의 꿈' 등 10권의 시집을 펴내며 소월시문학상 등 주요문학상을 수상한 시단의 중진. 순수서정에서 출발해 모더니즘, 80년대 이후에는 사회의식이 배어있는 시도 발표했던 오씨는 이번 연재로 순수 서정의 덧없는 아름다움과 깊이를 탐구하고 있다.

위 시 '영원.1' 전문에서 처럼 '찰나의 영원' , 그 모순의 삶의 깊이를 맑은 언어로 표현해 우리를 시공(時空), 탐욕의 일상에서 풀어주?위해 오씨는 겨울 산사로 칩거하곤 한다.

서울대 국문과 교수로서 학자로서의 엄밀성과 교수로서의 윤리성이 직관적이며 모순적인 시세계와 항상 상치돼왔다.

그래 오씨는 하루종일 멍청하게 TV를 보거나 먼산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비우든지, 진탕 술마시고 가사상태에 빠지든지 하며 교수라는 일상인에서 시인으로 코드를 바꿔 시를 써왔다.

이 일상적 삶의 상징적 죽임 행위의 완결판이 오씨의 겨울 산사다.

86년 치악산 구룡사를 시작으로 두타산 삼화사.미시령 화암사.설악산 백담사.달마산 미황사 등으로 겨울철에만 찾아들었다.

여름에 찾으면 관광객들로 소란스럽고 자신 또한 휴가 기분이 들까 엄동설한 눈길로 인적이 끊긴 산사를 찾아 참선하듯 시를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삶의 중심에는 문화가 있고, 문화의 중심에는 예술이 있고, 예술의 중심에는 문학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는 문학의 중심에 있고 시의 중심은 서정입니다."

오씨가 말하는 서정이란 시간과 일상에 쓸려지나가는 인간의 가없는 꿈, 사랑, 삶의 깊이를 보석처럼 영원하고 아름답게 꾸미는 힘이다.

"깨지는 것은/완전한 자유에 이른 까닦에/보석이 된다. /그 봄날의 풀꽃 반지도/그 강변의 모래성도/지금은 모두 강물에 씻겨 갔지만/우리들의 강 언덕엔/눈부신 보석 하나/푸른 하늘을 지키고 있다. /영원처럼…" <영원.3중>

강변 모래에 묻힌 사금파리 하나에서 어린 날 순수한 영혼을 보석처럼 찾고 있는 시다.

이처럼 일상에 쓸려간 영혼의 진실을 되돌려주기 위해 오씨는 교수직이라는 명예와 편안한 일상을 깨뜨리고 겨울산사, 순백의 감옥에 찾아든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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