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 '에이튼 숲의 은둔자' 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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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추리소설을 읽는 맛은 무엇일까.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벌어지는 살인사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긴박함, 허를 찌르는 결말, 뭐 대충 이런 전개가 주는 추리소설만의 짜릿한 상투성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역으로 한번 생각해 보자. 추리소설이란 으례 그런 것이라고 한다면 결국 사건의 변용만 있으면 그만이다.

마치 여름용 공포영화가 가슴큰 금발미녀가 죽을 힘을 다해 도망가다 결국 살인마의 손에 죽고마는 뻔한 줄거리를 계속 반복하는 것처럼 말이다.

요즘 소설들이 영상을 의식해 시각적이고 감각적으로 글을 쓴다고 해도 글쓰기는 역시 글쓰기다.

사건 나열만 있고 알맹이, 즉 읽는 맛이 없다면 소설을 읽을 필요가 없다. 추리소설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그런 면에서 영국 추리작가 엘리스 피터스(1913~95)의 캐드펠 시리즈를 눈여겨 볼만하다.

빠른 전개 위주로 돌아가는 추리소설에 식상한 독자라면 서서히 재미에 가속이 붙으면서 스릴과 감동을 주는 피터스 특유의 추리소설에 감탄할 것이다.

국내에서는 97년에야 캐드펠 시리즈를 통해 피터스가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영국에서는 '추리소설의 대명사' 아가사 크리스티에 버금가는 지명도를 가진 밀리언 셀러 추리작가다.

캐드펠 시리즈는 77년부터 그가 죽기 한해 전인 94년까지 18년에 걸쳐 내놓은 20권의 추리소설 묶음을 가리킨다.

중세기인 1137~45년 영국 내전을 시대상황으로 삼았고, 시루즈베리가 배경이란 사실, 크리스티 소설 속 탐정 무슈 포아로처럼 수사 캐드펠이 고정적으로 등장해 사건을 해결한다는 점이 이 시리즈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1권부터 차례로 읽어나가면 등장인물의 과거나 시대상황 등을 이해하는 데 훨씬 쉽지만 낱권, 혹은 거꾸로 읽어도 상관없다.

각각의 책들이 완벽하게 개별적인 흥미진진한 이야기 구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20권 가운데 가장 많은 이들로부터 호응을 얻은 작품은 미스터리의 절정이라는 제6권 '얼음 속의 처녀' 지만 제3권 '수도사의 두건' 도 영국 추리작가협회가 주는 '실버 대거 상' 을 받는 등 모든 책이 다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현재 국내에는 모두 열네권이 나와 있다.

'에이튼 숲의 은둔자' 는 가장 최근에 번역된 책이다.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중세 수도원이 배경이라는 점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을 떠올리게 한다.

에코만큼 방대하고 상세한 지식으로 독자들을 경악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사건 전개에 불필요하긴해도 상식이 되는 갖가지 정보들이 담겨 있는 점은 에코를 떠올리게 한다.

캐드펠은 물론 가상의 인물이지만 스티븐 왕이나 모드 황후, 라덜퍼스 수도원장 등은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것이어서 피터스는 잊혀진 인물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도 병행한 셈이다.

책 중반에 가서야 비로소 사건이 터지는 등 속전속결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안맞는 부분도 있겠다 싶은데 국내에서도 홈페이지가 개설될만큼 열광적인 독자를 이미 확보하고 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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