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소통] 김정권 감독 '동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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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연재를 시작하며 : 영화와 관련된 두 가지 차원의 소통 문제를 다루려 한다.

하나는 영화 속에 나타난 소통의 여러 모습이다. 커뮤니케이션 현상을 공부하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기로 한 나에게 있어 영화 속에 나타나는 여러 커뮤니케이션 현상은 참으로 흥미로운 대상이다.

또 하나는 매체와 사회적 소통의 독특한 형태로서의 영화 자체다. 특정한 영화가 관객들과 어떠한 소통을 얼마만큼 성공적으로 시도하고 있는가를 주의 깊게 살펴보려 한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기다린다.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시계탑 아래서. 여자가 기다리는 남자 역시 같은 장소 같은 시계탑 아래에서 그 여자를 기다린다.

억수로 퍼붓는 빗속에서. 그들을 갈라 놓고 있는 것은 21년이라는 긴 시간이다. 그러나 둘은 신비한 무선라디오라는 매체를 통해 시간의 장벽을 극복하고 밤마다 둘만의 은밀한 커뮤니케이션에 빠져든다.

매체는 이처럼 우리 몸의 한계와 시공간적 제약을 극복해서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있게 해준다.

모든 소통에는 반드시 매체가 필요하다. 그러나 매체만 있다고 해서 저절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나 아렌트의 말을 빌자면, 소통은 나와 다르면서도 무엇인가 공통점이 있는 타인을 필요로 한다.

소통의 영어 표현인 커뮤니케이션은 라틴어 '코뮤니카레 (communicare)' 에서 온 말인데, 그것은 무엇인가를 서로 나누고 공유한다는 뜻을 지닌다.

이러한 공유는 모든 소통의 (따라서 소통의 완벽한 형태라 할 수 있는 모든 사랑의)기본 전제이다.

주인공 인과 여자 친구 현지가 서로 마주보는 사진 포스터. 헤드라인은 "우린 지금 같은 곳을 본다" 다.

그러나 서로 상대방을 쳐다보는 것은 '같은 곳' 을 보는 것이 아니다. 서로 공유하는 것을 함께 바라봐야 비로소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 이 된다.

그저 상대방만을 바라보는 사랑은 연속극에서나 가능한 헛된 환상이다.

사랑은 서로 상대방을 소유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꿈을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 진정한 사랑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그대의 연인과 평생 같이 공유할 꿈부터 찾아 나설 일이다.

이제 영화와 관객의 소통에 대해 한 마디. 돌담벽을 손바닥으로 훑으며 걸어가는 1979년의 소은의 우수에 찬 모습은 같은 장소를 같은 모습으로 걷는 2000년의 인의 모습으로 오버랩 된다.

배경음악도 어울린다. 무엇인가 관객이 영화에 짜릿하게 동감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장면. 그런데 그 순간 인의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현지의 코믹한 모습에 나는 그만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장면의 현지는 분명 영화와 관객의 소통을 방해하고 있다. 또 마지막 부분에서 갑자기 나타난 경비원이 마치 도사인양 한 마디 툭 던지는 '세월은 그렇게 흘러가는 거다' 라는 밑도 끝도 없는 대사나 인생과 존재의 의미에 대해 자기도 모르는 소리를 지껄이는 현지의 설득력 없는 대사. 이들 역시 모두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사족이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배우의 입을 통해 직접 전달하려는 조급함은 오히려 관객과 영화와의 소통을 방해한다.

김주환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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