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봉 부담스러운 사람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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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평안남도가 고향인 퇴직 기업인 金모(70)씨는 지난 16일 북한측 이산가족 방문단 명단의 공개로 곳곳에서 재회의 꿈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지만 남의 일로만 느껴진다.

6.25 발발 직후 의용군 차출을 피해 월남한 金씨는 북에 두고온 본부인과 자식을 만나고 싶은 것이 속마음이다.

1998년 중국을 통해 부인이 아들을 낳고 독신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러나 남한에서 재혼해 1남2녀를 두고 있는 金씨는 "재산분배 등의 문제로 자식들 반대가 심할 것 같아 식구들에게 말조차 못꺼내고 있다" 고 하소연했다.

북한측 이산가족 방문단 명단의 공개로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는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는 가운데 상당수 이산가족들은 북한에 있는 가족과의 재회를 기피하고 있다. 연좌제 등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재혼으로 인한 가족관계의 혼란, 경제적인 부담 등이 그 이유다.

구멍가게를 꾸리고 있는 李모(67)씨는 85년 고향방문단으로 북한에 갔던 친척으로부터 북에 두고 온 아내가 딸과 부모님을 돌보며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남한에 있는 가족을 부양하기에도 버거운 처지에 북한 식구들까지 맡을 용기가 나지 않아 상봉 신청도 포기한 채 속앓이만 하고 있다.

월북한 오빠가 북한에서 살고 있는 鄭모(62)씨도 오래전에 오빠를 사망자로 등재했고 당분간 찾을 생각도 없다.

그동안 주변의 월북자 가족들이 연좌제 등의 이유로 고통 당하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鄭씨는 "헤어진 오빠를 당장이라도 만나고 싶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나설 생각이 없다" 며 "지금은 화해 국면이지만 향후에 남북관계가 어떻게 바뀔지 누가 아느냐" 고 말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현재 남한의 이산가족은 1세대 1백23만명을 포함해 총 7백67만명. 이중 약 5%만 상봉 의사를 적극적으로 내비치고 있다.

이북5도민회중앙연합회 홍성오(洪成五)사무국장은 "북한에 있는 가족도 월남자들을 대부분 전사자나 행방불명자로 북한 당국에 등재했다" 며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남한의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상봉에 나서기를 꺼리고 있다" 고 밝혔다.

1천만 이산가족 재회추진위원회측은 "상봉이 도리어 고통이 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당국이 호적·재산 문제에 대한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고 주장했다.

장정훈·이경희·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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