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외고 버스사고 도로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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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수학여행 중 고교생들이 참사를 당한 추풍령 사고 지점은 '빨래판' 식 미끄럼 방지 장치가 80% 이상 마모돼 사고의 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본사 취재 결과 드러났다.

제동 효과가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관리를 맡은 한국도로공사측은 즉각적인 조치를 미루다 사고를 맞았다.

경부고속도로 서울기점 2백15.3㎞ 지점인 사고 구간은 오른쪽으로 굽은 S자형 내리막 길. 운전자들 사이에서도 가속시 차량전복이나 추돌의 위험이 높은 구간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도로공사는 운전자들의 과속주행 욕구를 억제하고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몇년간 사고구간 30여m의 도로면을 요철형의 '빨래판' 식으로 특수 포장했다.

그러나 도로공사가 평소 보수를 부실하게 해 문제의 구간은 손으로 만져도 맨질맨질한 정도였다.

그로 인해 이 일대에서는 올들어 21건의 사고가 나 이번 사고를 포함, 22명이 숨지고 1백43명이 부상했다.

특히 지난달 26일 미국인 관광객 33명을 태운 관광버스가 이 일대에서 사고를 낸 뒤 28일 도로공사.고속도로순찰대 관계자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가졌지만 보름이 지나도록 응급조치를 하지 않아 결국 대형 참사로 이어지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사고 당일처럼 노면이 젖어 있는 경우 빨래판형 미끄럼 저항포장의 마루에 해당하는 예각 부분이 둥그렇게 닳아 오히려 차량의 미끄럼을 촉진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경북지방경찰청 이성호(李成虎)교통계장은 "빗길에서는 빨래판형 미끄럼 방지 포장의 골에 물이 차, 제동을 걸때 미끄럼 방지는커녕 윤활유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급제동 때 차체가 좌우로 흔들리며 크게 미끄러진다" 고 말했다.

올들어 이 지점에서 일어난 사고 대부분은 내리막 커브를 돌다가 제동 불량으로 앞차를 들이받은 사고들. 이와 함께 사고지점으로부터 2백60m 전방에 설치돼 있던 띠 형태의 미끄럼 방지포장이 지난달 2일 덧씌우기 포장 공사가 끝난 뒤 44일이 지난 지금까지 사용할 수 없게 돼있어서 사고를 키웠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도로공사 구미지사 도로과장 박창율(朴昌律)씨는 "이미 예산배정.발주업체 지정 등을 마쳐 18일부터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며 "사고현장인 서울기점 2백15.3㎞지점의 미끄럼 방지 포장도 함께 처리할 계획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실기(失機)하고 말았다" 고 해명했다.

한편 최근 4년간 서울기점 2백15~2백16.5㎞ 구간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한 도로공사측 분석 결과에 따르면 94건의 사고 가운데 노면이 젖었을 때가 76.6%(72건)를 차지하고 있다.

김천〓정용환.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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