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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문제, 시민 동참해야 풀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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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코펜하겐 유엔 기후변화 회의가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는 선언적 약속에 그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회의가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많은 걱정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기후변화는 인간 스스로 지구촌 재앙을 불러오는 엄연한 과학적 사실이다. 인종과 지역·종교와 이념을 떠나 누구에게나 닥쳐오는 비극을 잉태하고 있다. 한마디로 지구 전체가 구명보트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그래서 인류 최초로 지구촌이 함께 뭉치는 계기가 되었고, 공동 대처방안을 마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분자생물학자 개릿 하딘이 ‘공유지의 비극’을 처음 설파한 것이 1968년이다. 지구촌의 ‘인구과잉’은 필연적으로 공유지인 지구 전체를 오염 덩어리로 만들고, 그 결과 우리 모두가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어떤 과학기술적 방안도 없으며, 오직 인간의 양심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 다음해에 여성정치학자 크로(Crowe)가 반박했다. 양심에 호소하는 것은 곧 인문사회과학의 역할을 요구하는데, 그것 또한 허망하다고. 모든 학문 분야가 오직 자신만의 고유한, 외톨이식 문제해결에 몰두하고 있어 그들이 내놓는 해결방안은 곧 다른 분야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교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동차를 개발해 인간의 이동·생산·생존문제를 많이 해결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해 많은 자동차를 굴리게 되면서 CO2를 과잉 배출하는 문제를 낳았다. 급기야 지구 전체의 기후변화 문제까지 초래했다.

그렇다면 크로가 주장한 대로 다학문 간 융합 내지 협력으로 그런 공유지의 비극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딘은 1998년 이렇게 응수했다. “다학문 간 융합을 통한 해결, 말하기는 쉽지. 그래, 어느 누가 할 수 있다고 나설 수 있어?” 기존 해결방안들의 단순한 연계 내지 협력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동일한 문제에 대한 철저한 공유 과정을 통해 새로운 해결방안을 ‘창안’하는 길만이 진정 융합 해결의 실마리다.

가장 먼저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시민 모두가 철저히 공유해야 한다.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융합적·실천적 해결방안도 정부가 아니라 시민 스스로가 마련해야 한다. 그걸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은 ‘풀뿌리’ 담론이다. 반상회에서, 동창회에서, 교회에서, 가족 간에 기후변화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처한 상황과 관점에서 공동 대처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이런 시민들의 동참은 실로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 비단 기후변화만 아니라 에너지 부족, 환경오염, 인구문제, 교통문제, 당파적 분열 등을 동시에 해결해 주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시민 스스로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는 풀뿌리 담론을 확산시키는 과정을 생략하고, 정부가 만든 해결방안을 강요하는 그린(Green) 캠페인은 시민들에게 지나가는 나팔소리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코펜하겐 회의가 이런 풀뿌리 담론을 확산시키는 계기로 이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김학수 서강대 교수 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