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경찰 근무조건 열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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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최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간경영' 이란 책이 서점에서 많이 팔리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인간경영의 한 방법으로 "한 사람에게 꽃과 열매를 함께 주지 않는다" 란 원칙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는 권력을 가진 자에게는 급여를 적게 주고 급여가 많은 자에게는 권력을 주지 않아 서로를 견제해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인간 관리전략은 도쿠가와 막부가 2백60년간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기초를 마련했다고 한다.

그가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뒤를 이어 일본을 지배하던 1600년대에는 경제력(열매)보다는 권력(꽃)을 높이 평가하던 시대였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모든 사회관계와 국제관계에서 경제논리가 우선적으로 적용되던 시대에도 권력이 있으니 급여를 적게 준다는 원칙을 지킬 수 있을까.

경찰공무원의 경우 다른 공무원과 달리 범죄검거나 교통단속시 사고의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고 낮과 밤이 따로 없는 24시간 내내 어려운 근무여건에 처해 있다.

질환이 의심되는 사람이 공무원 중 가장 많으며 명절이나 가까운 사람의 길흉사 때 비상근무 등으로 참석하는 기회가 적어 '의리없는 사람' 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승진전보나 인사이동으로 주거생활이 불안정하지만 봉급은 일반기업은 물론 군인이나 공안직보다 낮고 근무에 상응하는 수당도 받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 파출소의 경우 월 75시간만 수당이 지급되기 때문에 나머지 초과근무 수당은 받지 못하고 있다. 경찰특공대는 각종 테러와 인질구출 등의 위험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위험수당은 월 2만원뿐이다.

교통경찰관도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길거리에서 공해에 시달리고 있지만 월 수당은 10만원이다.

더욱이 경찰관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은 경찰관의 정당한 법 집행에 대한 일부 시민들의 폭력적 저항이다.

파출소에서 행패를 부린다거나 교통단속 경찰관의 멱살을 잡고 시비를 하고 불법시위자들이 진압부대원들에게 쇠파이프와 각목, 돌 팔매질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도 경찰관들이 공권력을 행사하는 직업이니 봉급을 적게 받더라도 열심히 근무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동안 대다수 경찰관들은 박봉과 열악한 근무여건 속에서도 사명감 하나로 근무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부조리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열심히 근무할 수 있도록 보수수당을 현실화해 사기를 진작시켜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경찰관에 대한 투자는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나 마찬가지다. 그 혜택은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인식했으면 한다.

박광현 <서울 경찰청 공보담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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