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자립형 사립고 도입할만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어제 대통령 자문기구인 새교육공동체위원회(새교위)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보고한 '교육정책보고서' 에는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

그 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자립형 사립고교와 영재학교 제도의 도입 부분이다. 새교위는 2002년부터 학생 선발과 수업료 등 납입금의 책정,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 등을 자율적으로 결정해 시행할 수 있는 자립형 사립고와 영재학교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건의했다. 지난 20여년간 유지해 온 고교평준화 정책에 일부 수정을 가한 것이다.

그동안 고교 평준화 정책으로 인해 교육의 질이 하향평준화한 측면이 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공교육의 질 저하는 사교육비의 증가를 불러왔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해외유학 봇물을 이뤄 귀중한 외화를 낭비하고, 현지에서 적응하지 못한 채 방황하거나 탈선하는 '패러슈트 키드' 를 양산하기도 했다.

우리는 획일적인 고교 평준화의 틀을 일부 깨고 중등교육의 다양화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립형 사립고와 영재학교의 도입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평준화 교육의 단점 중 하나는 고교 교육까지는 형식상 경쟁력 없는 체제를 유지하면서 내용상으로는 모든 교육이 대학입시 위주로 짜여 있다는 점이다.

학생들의 특성이나 진로 결정을 수용할 다양한 채널없이 대학입시에만 몰리는 병목현상을 만들어 놓았다. 이 병목현상을 없애기 위해 적성과 창의성을 살릴 다양한 교육체계는 시급하다.

또 자립형 사립고의 도입과 병행해 기존 공립고의 질적 제고를 유도할 상승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도입에 따른 문제점도 예상할 수 있다. 당장 '귀족화' 비난이 따를 것이다. 자립형 사립고 제도는 1995년 교육개혁위원회가 도입을 추진했다 백지화했고 지난해에는 교육발전 5개년 계획 시안에 포함됐다 시행이 유보됐다.

계층간의 위화감을 조장하고 평준화 정책에 어긋난다는 거센 반발 때문이었다. 과도한 등록금이나 고급시설로 귀족화라는 비난을 받아선 출발부터 어려울 것이다.

또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과 절차.방법으로 학생들을 선발하는 게 중요하다. 별도의 선발고사로 고교입시 과열을 부채질한다는 비난을 피해야 한다. 중학교 내신성적과 적성을 감안한 방식으로 선발해야 할 것이다.

기왕 이 제도를 도입할 바엔 좀 더 과감히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보고서에는 못박지 않았지만, 자립형 사립고를 우선 각 시.도에 한 개 정도 운영하려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교육소비자의 수요와 욕구를 충족하기 힘들다. 그 규모와 범위를 넓혀 교육수요자의 갈증을 풀어주는 게 도입 취지를 확산시키는 방법일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