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 칼럼]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느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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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장자(莊子)가 제자인 혜자(惠子)와 함께 강변을 거닐다가 말했다. "물고기들이 아주 즐겁게 노는구나. 저것이 바로 물고기의 즐거움이니라. "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은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습니까. " 스승이 답했다. "너는 내가 아닌데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

*** 또 무산된 송두율의 귀환

상대를 알기 위해선 상대의 입장에 서야 한다는 지혜를 일깨우는 이 대화는 철학자 송두율(宋斗律)이 북한을 보는 시각, 통일 논의의 '내재적-비판적 접근' 의 중요 단서다.

타자의 이해를 위해서는 우선 타자의 본질을 타자의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자신의 가치체계를 절대화해서 타자에게 이를 강요해선 안된다.

남한의 가치로 북한을 바라볼 때 북에는 뿔 달린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타자에 대한 무한한 저주가 나온다. 반대로 자신에 대해선 우울한 비판을 하면서 타자를 지나치게 이상화하는 경향도 있다.

전자가 이른바 보수 강경세력이라면 후자는 재야세력의 대북관이다. 타자를 악마시해서도 안되고 지나치게 이상화해서도 안되는, 상대의 눈높이에서 상대를 이해하려는 방식이 송두율이 주장해 온 통일논의의 키워드라고 나는 이해하고 있다.

이런 송두율이 꿈에도 그린다는 고국땅에 아직도 발을 붙이지 못한 채 33년간 사실상의 망명자가 되어 환갑을 3년 앞둔 지금껏 '비전향 장기수' 로 독일에 남아 있다. 이 철학자의 귀환이 성사될 듯하다 또 불발로 끝나버렸다.

나는 4년 전 베이징(北京) 남북학자 세미나에서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눈 게 그를 아는 전부다. 나머진 그의 저술을 통해 알고 있을 뿐이다.

그의 저술이나 대화를 통해 그가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나는 믿는다. 그 스스로도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여러번 밝혔다.

그런데 남한 정부는 아직도 그를 친북세력으로 분류하고 준법서약서를 강요하고 있다. 준법서약이란 우리식 인민재판이다.

전향할 건덕지가 없다는 사람에게 무슨 전향을 강요하는가. 종이 한장에 설령 서약을 했다한들 어떻게 사상전향을 믿을 수 있나. 이런 방식 자체가 졸렬한 냉전사고의 유물이고 무책임한 행정편의주의다. 한명의 좌파성향 지식인을 수용하지 못할 만큼 우리 사회는 그렇게 옹졸하고 편협한가.

그는 이응로(李應魯).윤이상(尹伊桑)에 이어 지난 암울했던 군사독재정권의 희생자다. 비록 외국에서지만 유신과 광주탄압에 분노하고 격렬히 맞섰던 해외 민주화운동 인사다.

또 지금은 남북 정상이 약속하고 선언한 민족협력과 상생의 시대다. 송두율만큼 북한을 객관적으로 알려 하고 사실상 북한의 주체철학을 심도있게 연구한 학자가 없을 것이다.

남북 상생의 협력체계를 이루기 위해서도 객관적 조정자역으로서 그의 역할은 우리의 필요에 따라 초청해야 할 귀한 연구자다.

물론 남는 의문은 있다. 그는 정말 북한정권 21위 서열의 정치국원 후보 김철수인가. 이 의문에 대해 그는 여러차례 자신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독일 국적인 나를 어떻게 정치국원후보로 올릴 것인가.

누군가의 음해다. 설령 북한 내부에서 그런 인사를 했다 해도 본인에게 사후 통보라도 할텐데 그런 사실조차 없었다" 고 했다. 그래서 그는 '터무니없는 소리' 를 글로 썼다고 황장엽씨를 명예훼손죄로 고발했다.

*** 국정원 간첩의혹 밝혀야

이제 이 의문을 풀 주체는 국정원이다. '정치국원후보 김철수' 는 베일에 싸여 있는 간첩으로 알려져 있다. 간첩 김철수와 송두율의 동일인 여부는 국정원이 총력을 기울여 그 진상을 밝혀내야 할 기본업무다.

그런데 국정원 내부에선 강온파가 대립해 결국은 준법서약을 받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업무처리다.

그가 의심받을 만한 근거가 있다면 강온으로 문제를 풀 일이 아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귀국시켜 조사를 하든지, 또는 독일에 요원을 파견해서라도 진상을 규명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그런데 제발로 오겠다는 사람마저 오지 못하게 하고 2년이 넘도록 '송두율' 을 계속 '김철수' 라는 의혹으로 남기고 있다. 이는 국정원의 직무유기가 될 뿐만 아니라 한 지식인의 생명을 냉전 이데올로기로 목조르는 또다른 폭력에 속한다. 이 의혹을 풀기 위해서도 송두율의 귀환은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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