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제철] 장흥 남포마을 굴 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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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흥군 장흥읍에서 835번 지방도를 따라 15㎞가량 가면 장흥군 용산면 상발리 남포마을이 나온다. 코앞에 조그만 섬 하나가 있는 게 갯마을의 운치를 더해 준다. 갯벌에서 캐낸 남포의 자연산 굴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상인들이 서로 사 가려 다툴 만큼 인기를 끌었다. 다른 지역의 것보다 크고 맛이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양식 굴이 급증하면서 값이 크게 떨어지고 상인들의 주문마저 점점 줄었다. 위기를 겪던 97년 겨울, 주민 김선홍(55)씨 등 3명이 판로를 궁리하다 굴을 구워 먹게 장사하기 시작했다. 입소문을 타면서 마을을 찾는 외지인이 늘어났다. 요즘은 전체 52가구 중 11가구가 비닐하우스를 치고 굴 구이 장사를 한다. 손님이 들면 조그만 황토 화덕에 장작으로 불을 지피고, 굴 소쿠리와 장갑, 조그만 칼을 준다. 석쇠 위에 굴을 얹으면 뜨거움을 견디지 못해 껍질이 벌어지고, 그 틈에 칼을 넣어 깐 뒤 속살을 떼어 먹는다. 통통하면서 부드럽고 짭조름한 게 별미다. 값도 싸 부담이 작다. 서너 명이 먹을 수 있는 굴 한 소쿠리(8~10㎏)가 2만원이다.

어촌계장 이성선(40)씨는 “굴을 구워 먹는다는 발상 자체가 새로웠고 그게 주효한 것 같다”며 “위기가 없었다면 좋은 굴을 헐값에 상인들에게 넘긴 채 어렵게 사는 어촌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굴 구이 집들은 겨울 한철에 2000만~3000만원씩 벌고 있다. 나머지 집들도 관광객들이 알굴(껍질을 깐 굴)을 사 가는 덕에 1000만원 안팎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남포마을 주민들은 마을 갯벌에서 3~4년 자란 굴만 팔기로 규약도 만들어 지키고 있다. 마을의 것이 동나면 장사를 중단한다. 외지 굴을 가져다 팔 경우 마을에서 퇴출하고 벌금을 물리는 벌칙까지 두고 있다. 김선홍씨는 “내년 3월까지 굴 구이를 맛볼 수 있는데, 날이 지날수록 굴 속 알이 커지고 맛이 좋아진다”며 “상황버섯을 기르고 남은 참나무를 잘게 쪼갠 장작불과 화덕의 황토에서 나오는 기운이 부인병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장흥=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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