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고교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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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가 24일 도쿄에서 열린 위장 정치헌금 해명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들으며 입술을 깨물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는 “ 국민께 걱정을 끼친 데 대해 깊이 사죄한다”고 말했다. [도쿄 AP=연합뉴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내각이 출범한 지 꼭 100일에 한·일 관계가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25일 발표할 고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서 독도 지명을 명기하지는 않았지만, 일본의 영유권 주장을 명확히 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토야마 정권은 아시아 중시 외교를 표방했지만 독도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동시에 순항 중인 한·일 관계의 악화를 원치 않는다는 메시지도 던진 듯하다.

이번 고교 해설서에서의 핵심은 “중학교에서의 학습을 토대로”라는 부분에 있다. 현행 해설서에 없었으나 이번에 새로이 들어간 이 구절은 지난해 7월 발표된 중학교 사회과 해설서의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에 대해 일본과 한국 사이에 주장의 차이가 있다. 우리 나라의 영토·영역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기술을 가리킨다.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분명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중학교에서 가르친 내용을 고교에서도 가르쳐야 한다는 논리다.

이는 과거사 문제와 독도 문제를 분리해 바라보는 일본 정부의 입장이 교육 정책에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러일전쟁(1904년)에서 한국 강제병합(1910년)에 이르는 일련의 일제 침략 과정에서 독도의 일본 편입이 이뤄졌다는 한국의 역사 인식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입장이다. 일본은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 늑약 체결(1905년 11월) 이전에 국제법상 통용되는 무주지선점(無主地先占) 원칙에 따라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1905년 1월)했기 때문에 일본의 식민 지배와는 무관하다고 본다.

여기엔 자민당이나 민주당이나 차이가 없다. 민주당은 올 7월 펴낸 총선 공약집에서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분명히 한 뒤 대화를 통한 해결을 주장했다. 정부 당국자는 “하토야마 정권이 과거 자민당 정권보다 과거사 문제에 전향적인 것은 틀림없다”면서도 “독도 문제에 대해선 역사 문제와 별개로 영유권 분쟁의 측면에서 인식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번 해설서에서는 일본 정부가 고심을 거듭한 흔적도 엿보인다. 독도를 명기하지 않고 중학교 학습에 입각한다는 우회적 표현을 쓴 것이다. 내용은 살리되 표현에서는 최대한 덜 자극적인 문장을 사용해 한국 정부와 과도한 마찰을 피해 보려는 고민의 결과물로 받아들여진다. 자민당 정권과의 차별성이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내년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는 한국의 국민 감정도 고려한 듯하다.

남은 문제는 정부의 대응 수위와 일본의 반응이다. 지난해 7월 중학교 해설서 파문 당시 정부는 시게이에 도시노리 주한 일본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엄중 항의하고, 권철현 주일 대사를 일시 귀국시켜 한 달가량 국내에 머물도록 해 사실상의 대사 소환 조치를 취했다. 이번에 중학교 해설서와 달리 우회적 표현을 사용한 점을 감안하면 주일 대사 귀국과 같은 최강수는 두지 않을 것으로 점쳐진다. 정부 당국자는 “표현 수위와 과거 전례를 감안해 외교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독도 영유권 수호에 대한 우리 정부의 명확한 입장 표명과 일본 측의 표현 완화에 대한 평가, 한·일 관계의 급격한 경색이 몰고올 파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응 강도를 조절해 나가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예영준 기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일본 정부가 각급 학교에서의 과목별 교육 방침을 규정한 ‘학습지도요령’을 보다 구체적으로 풀이한 것으로 문부과학성이 작성한다. 과목별 교과서 저술과 일선 학교 수업의 지침서 역할을 하는 것으로 10년마다 개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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