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과학 칼럼

‘2009 세계 천문의 해’를 보내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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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가 망원경으로 처음 달을 관측한 게 1609년 12월이라고 기록은 전한다. 꼭 400년 전에 있었던 인류사의 큰 사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허준이 『동의보감』을 완성하기 1년 전이었다.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본 달의 모습은 그때까지 믿어왔던 완벽한 천상의 세계가 아니었다. 여기저기에 산이 솟아 있고 평원에는 구덩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이듬해 1월에는 목성 주위에서 네 개의 위성을 발견한다. 목성 역시 달을 거느린 하나의 행성이었던 것이다. 이어 그는 금성이 달과 같이 차고 기울기를 반복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금성이 지구가 아닌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었다. 1543년에 코페르니쿠스가 제안한 태양 중심 우주관이 갈릴레이의 눈앞에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가 『새로운 천문학(Astronomia Nova)』을 출간한 것도 1609년이었다. 케플러는, 행성이 태양을 초점으로 하는 타원을 그리며 궤도 운동을 한다고 이 책에 밝혀 놓았다. 신의 완벽성을 드러낸다고 믿었던 원이 아니라 타원 운동을 하고 있었다. 행성과 태양을 잇는 선이 단위 시간에 휩쓰는 면적이 궤도 어디에서든 일정하다는 면적 속도 일정의 법칙도 규명했다.

1618년에는, 궤도 주기의 제곱이 궤도 긴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조화의 법칙을 발표한다.

조화의 법칙은 오늘날 블랙홀의 질량을 가늠하는 데에도 그대로 쓰인다. 케플러의 위대성은 행성의 운동을 정량적으로 기술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자신의 법칙을 이용해 수성과 금성이 태양 앞을 지나가는 시기를 예측할 수 있었다. 실제로 수성과 금성의 일면통과(日面通過) 현상이 1630년과 1639년에 각각 관측됐다.

갈릴레이가 행성 운동의 단순한 기하를 다뤘다면, 케플러는 행성 운동의 물리를 캐고 들어갔던 것이다. 케플러가 자신의 저술을 ‘새로운 천문학’이라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갈릴레이의 망원경이 우주에서의 행성 지구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가늠자의 구실을 했다면, 케플러의 행성 운동에 관한 법칙은 인류의 우주를 향한 염원에 길을 열어 놓았다.

지난 3월 7일 미국항공우주국이 외계에서 행성들을 찾아낼 목적의 우주선을 띄워 올리면서 그 이름을 ‘케플러’라고 불렀다. 우주선 케플러는 앞으로 3년 반 동안 10만 개 이상의 별에서 오는 빛의 밝기 변화를 집중적으로 모니터링한다. 이 별들 각각의 주위를 돌고 있을지 모르는 행성들의 성면통과(星面通過) 순간을 포착함으로써 외계 행성체들을 찾아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이 계획으로 지구형 행성들이 발견되는 날 유엔이 이번엔 ‘우주 천문의 해’를 선포하기 바란다. 지구인이 우주 시민의 자격증을 받는 날이 될 것이다.

홍승수 서울대 명예교수 물리천문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