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묻지마 공모 투자' 극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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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기관투자가들이 코스닥 등록을 위한 공모주 청약에서 확정 공모가를 크게 높여 잡는 일이 잦다.

이번주 청약기업들의 경우 확정 공모가가 당초 기관들의 수요예측 과정에서 잡힌 예정가보다 평균 36% 올라갔다. 특히 인네트의 경우 공모 예정가는 2만원이었으나 최종 확정가는 3만5천원으로 75%나 껑충 뛰었다.

공모가격이 커지면 시장이 조금만 위축돼도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일반 청약자들은 주의해야 한다.

◇ 무조건 배정받자〓공모가가 올라가는 것은 기관들이 물량을 배정받기 위해 높은 가격을 써내기 때문이다. 기관들은 확정된 공모가보다 높게 들어가야 물량을 배정받을 수 있지만 막상 배정받을 때는 공모가를 적용하기 때문에 높게 써내도 부담이 없다.

지난달 공모했던 옥션의 수요예측에서 D투신은 기업분석을 통해 등록 후 적정가를 2만3천원으로 제시했음에도 5만원으로 써내 공모가를 예정가(2만원)보다 두배 높은 4만원으로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다.

증권업협회는 기관들의 공모가 부풀리기를 막기 위해 다음달부터 기관 수요예측 제도를 개선, 입찰가를 공모가보다 낮게 써낸 기관에도 물량을 배정하기로 했다.

◇ 땅 짚고 헤엄치기〓기관들의 '묻지마 투자' 는 손해볼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코스닥 등록 기업의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은 등록 후 6개월(7월부터 1년)간 지분 매각이 금지돼 등록 후 매물부담 없이 주가가 가파르게 오르는 경향이 있다.

또 주가가 공모가의 80% 이하로 떨어지면 주간 증권사가 등록 후 2개월간 시장 조성으로 공모가를 받쳐준다. 이 때문에 기관들은 기업 분석에는 무관심한 채 물량 배정에만 신경을 쓴다. 다음달부터 기관의 공모주 배정물량이 55%에서 65%로 높아져 기관들의 '묻지마 투자' 가 더욱 극성을 부릴 전망이다.

◇ 단기 차익이 목표〓증권업협회는 기관의 장기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2개월 이상 보유하는 기관에 공모주를 더 배정하고 있으나 정작 기관들은 관심이 없다. 코스닥 신규등록 이후 주가가 가파르게 오를 때 팔아 차익을 챙기려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신규 등록 종목의 상한가 일수가 짧아지고 있다. 지난 2월 신규 등록 벤처기업들의 연속 상한가 일수는 평균 20일이었으나 3월 13일, 4월 9.3일, 5월 8.1일, 6월 5일 안팎으로 줄었다.

한빛증권 조장식 기업금융부장은 "미국은 등록을 주간한 증권사가 공모주식의 25%를 배정받으며 공모가를 책임진다" 면서 "국내에서는 공모가는 기관이 결정하고 시장 조성의 책임은 주간 증권사가 맡고 있어 불합리하다" 고 말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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