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TV 가이드] MBC 추석특집극 '아버지의 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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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가 "아가야, 나도 보름달이 무섭다"고 하소연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만큼 '명절 증후군'과 고부간의 갈등은 우리 사회에 널리 자리잡고 있어 명절 특집극의 주요 소재가 되곤 한다.

그런데 28일 오전 9시30분 방영되는 MBC 추석 특집극 '아버지의 바다'는 사뭇 다르다. 독특하게도 아버지와 아들, 형과 동생 간의 서툴고 투박하지만 진한 애정을 다루고 있다. 삼형제를 혼자 키워낸 아버지가 아들들과 갈등을 겪으면서 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경남 통영의 포구를 배경으로 따뜻하고 코믹하게 그려냈다.

아내를 잃은 뒤 더 이상 배를 타지 않고 20년 넘게 선박 수리, 도색일 등을 하며 삼형제를 키워낸 뱃사람 박태종(백일섭). 예순이 넘도록 세 아들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그는 무뚝뚝하고 거칠지만 정 깊은 한국 아버지의 전형이다.

서울에서 시간강사로 전전하다 이혼한 뒤 고향으로 내려온 맏아들 재훈(김세준)은 태종에겐 죽은 아내와도 같은 존재다. 서울로 돌아갈 생각만 하고 동네 사람도 무시하는 아들이지만 태종의 장남 편애는 유별나다. 때문에 괄괄하고 급한 성격의 둘째 재철(정찬)은 사사건건 아버지와 부딪히다가 몇년 전 집을 나갔다. 막내 재동(이준)은 여기저기 외상술 먹으며, 동네 건달들과 어울려 다니는 말썽꾼이다. 태종은 자신이 오냐오냐 키운 탓인 것만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어느날 재동이 음주운전을 하다가 뺑소니 사고를 치자 태종은 서먹하게만 지내던 둘째에게 전화를 한다. 부산에서 강력계 형사로 근무하니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해서다. "막내가 일냈다. 함 내려와라"는 아버지의 말에 재철은 고향으로 발길을 돌린다. 형제가 모처럼 한 자리에 모이면서 그동안 눌러왔던 감정들이 폭발하게 된다.

'아버지의 바다' 역시 요즘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출생의 비밀이 갈등과 해결의 중심축이다. 하지만 트렌디 드라마에서는 맛볼 수 없는 더운 기운이 후욱 느껴진다. 가슴에 뜨거운 정을 담고 있으면서도 왠지 버성기기만 하는 아버지와 아들. 모처럼 만난 명절, 브라운관 앞에 나란히 앉아 무언의 대화를 나눠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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