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핵과 학자와 스파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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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1907년 7월 네덜란드의 수도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는 우리에게는 고종황제의 밀사로 파견된 이준(李儁)열사의 분사(憤死)로 오래 기억되고 있다.

대한제국 대표단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일본대표의 방해공작으로 한국의 주권회복에 별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으나 이 회의는 '지상전의 법규관례에 관한 조약' 을 체결했다.

이 조약에는 '스파이' 에 관한 부속조항이 포함돼 있어 관심을 모았다.

어떤 경우에도 스파이 활동은 엄하게 다스리는 것이 불문율의 관례처럼 돼 있었으나 이 조항은 스파이를 '교전 당사국의 작전지대에서 은밀하게 또는 허위로 첩보활동을 하는 자' 로 제한한 것이다.

곧 제복군인의 첩보 및 정찰활동은 일반적인 스파이 활동과는 구별해 스파이로 처벌받지 않도록 규정한 것이다.

스파이에 관한 최초의 국제조약이었으나 이 규정도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유명무실화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스파이는 주로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됐으나 종전 후에는 동구권 국가들의 냉전 체제를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 선두주자가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와 군참모본부 정보총국(GRU)이었고, 대부분의 동구권 국가들이 그 체제와 조직을 그대로 모방했다.

냉전이 종식돼가는 기미를 보이면서 정치.군사적 목적에서가 아니라 첨단기술을 빼내기 위해 스파이를 무차별 투입하는 양상으로 바뀌었다.

주로 아름다운 여성을 내세우는 미인계를 쓴 것도 특징 가운데 하나였다.

69년 8월 KGB가 미사일 유도체제를 개발 중이던 프랑스의 과학자를 미인계로써 포섭하려 했던 일이나 92년 8월 주일(駐日)러시아 통상대표부 간부가 일본의 고성능 반도체 기억소자와 통신위성용 중계증폭기를 빼내려다 발각된 사건이 좋은 예다.

지금은 스파이가 동서 간의 문제도, 국가 차원의 문제도 아니다.

연구단체나 기업체조차 첨단기술의 자료를 빼내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성공하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고, 실패해도 그만이다.

최근 미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해외를 출장 혹은 여행 중인 미국의 유수한 핵 과학자들이 세계 각국의 스파이들로부터 집중 공략당하고 있다 한다.

중국.러시아.이스라엘 등 스파이 요 주의국은 물론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도 당할 가능성이 크다니 바야흐로 '신(新)스파이 전쟁' 의 시대가 돼가는 것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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