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그 후 지금은] 41번째 생일 앞둔 최진실 묘역에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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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배우 고 최진실씨 유골함 도난'.

2009년 8월 15일 광복절 오전에 처음 전해진 이 충격적인 사건은 올 여름 막바지 더위를 더욱 뜨겁게 달구었다.

지난해 10월 2일 자살로 생을 마감한 탤런트 최진실의 유골은 이틀 후 두물머리가 잘 내려다 보이는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갑산공원에 안치되었다. 꼭 10개월이 지난 8월 4일 밤 누군가 그 녀의 유골을 몰래 빼내갔다. 10일 넘게 아무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뒤늦게 신고를 받은 경찰은 10일간 집중 수사 끝에 8월 25일 밤 양평에서 300km나 떨어진 대구에서 유골을 찾았다.

타의에 의해 영원의 안식처를 떠났던 최진실의 유골은 56일 만인 9월 29일 제자리로 돌아왔다.

낮에도 수온주가 영하로 내려간 지난 19일 오후 5시 무렵에 찾아간 갑산공원. 공원묘지 남쪽 언덕에 위치한 '국민배우 최진실의 묘역'에는 찬바람이 스산하게 불었다.
꽤 넓은 묘역 북쪽에 최진실의 유골함이 안치된 납골묘가 자리잡고 있다. 유골함을 안치한 직경 1m 가량의 원통형 석물 위에 하트 모양의 큰 석물이 올려져 있었다. 하트 모양 앞면에는 생전의 최진실 모습과 함께 ‘만인의 연인, 사랑스러운 그녀 이곳에 잠들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무거운 석물을 들어올리고 유골함을 빼내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도난 사건 전 분묘 형태에 유골함을 안치한 것과 달라진 모습이다.

최진실이 다시 영면에 들어간 묘역의 크기는 도난 사건 전과 비슷했다. 하지만 유골함을 훔쳐간 범인을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CCTV는 납골묘 바로 뒤에 한 대 더 설치되었다. 관리도 보안회사가 직접 맡아 운영한다고 한다.
납골묘 바로 앞은 팬들이 보낸 듯한 기념품과 조화가 가득했다. 밀감 한 접시와 소주 한 병도 눈에 띄었다. 묘역에는 최진실의 얼굴이 들어간 추모비와 ‘별’ 모양의 기념비가 나란히 세워졌고, 최진실이 생전에 출연한 작품의 포스터를 담은 석판이 납골묘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묘역 한쪽에 마련한 쉼터의 탁자 위에는 방명록이 놓여 있었다.

'언니의 생일을 미리 축하하며… 2009. 12. 19'.

방명록을 열어보니 추운 날씨에도 국민배우를 찾은 사람이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최진실은 1968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태어났다. 살아있다면 24일은 고인의 41번째 생일이다. 팬들이 미리 '축하파티'를 마련해 준 것일까. 대스타는 사후에도 외롭지 않은 모습이다.

최진실의 매니저였던 박상호 씨에 따르면 고인의 41번째 생일인 24일에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집에서 조촐한 추모식을 갖고 일부는 묘역을 찾을 예정이라고 한다.

◇도난 사건 의문점은 다 풀렸을까=경찰은 사건 발생 21일만에 범인 박모 씨를 체포하고 유골을 찾았지만 유골함은 바뀌어 있었다. 한때 "회수한 유골이 실제로 최진실의 유골이 맞느냐"는 의문이 일었다. 화장을 한 유골은 DNA 감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유골함을 훔진 범인의 범행 동기도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범인 체포 때 처음 수갑을 채운 양평경찰서 오재성 형사를 만나봤다.

오 형사는 "되찾은 유골이 최진실의 유골인지에 대해 과학적으로 100% 확실하다고 증명할 수는 없지만, 여러 수사 증거물에 의하면 확실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 형사에 따르면 범인은 8월 4일 밤 갑산공원에서 유골함을 훔진 후 다음날 오전 7시 30분 강원도 속초로 이동하는 모습이 인제군 용대리 검문소 CCTV에 잡혔다. 범인은 속초의 유골함 가게에 들러 새 유골함을 구입한 후 동해안 바닷가에서 유골함을 깨 유골을 옮겨담아 대구 집으로 돌아왔다.

경찰은 범인을 집에서 체포할 때 방안 서랍장 위에 있던 새 유골함을 발견했다. 그 유골함이 속초에서 구입한 것과 같은 유골함인 것을 가게에서 확인했다. 또 깨버린 유골함은 범인 체포 직후 그의 집에서 2.5km 떨어진 대구 앞산공원에서 회수했다. 분묘의 석판을 깰 때 사용한 해머는 범인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찾아냈다. 이런 증거와 정황을 종합할 때 "범인 집에서 찾아낸 유골은 최진실의 유골임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범인 박씨는 체포된 후 범행 동기에 대해 "최진실의 영혼이 내 몸 속에 들어와 나는 진실이가 시키는대로 했다"고 주장했다. 영혼이 옮겨붙는 이른바 '빙의'를 들먹였다. 하지만 박씨는 과거에 정신 이상으로 치료받은 적이 없었고, 수사 때 정신감정 결과도 '정상'으로 나왔다고 한다.

박씨를 체포하고 심문한 오 형사는 그를 검찰에 송치하며 "마지막으로 연락할 곳이 있으면 통화하라"며 휴대전화를 건넸는데, 이때 박씨는 맞벌이하는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애들, 학교 잘 챙겨줘라.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싱크대를 제작해 판매하는 직업을 가진 박씨는 '평범한 가장'이더라는 것.

결국 범인이 최진실 유골을 훔친 진짜 이유는 현재로선 '그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이다. 박 씨도 고 최진실씨와 같은 1968년에 태어났다.

노태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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