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읽기] 박수칠 때 떠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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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서세원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연예인 중 한 사람이다. 화요일의 '서세원쇼' (KBS2)를 시작으로 목요일은 '서세원의 야! 한밤에' (KBS2), 그리고 주말엔 '좋은 세상 만들기' (SBS)와 '일요일 일요일밤에' (MBC)등 3개 공중파 채널에서 무려 4개의 오락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가위 방송계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비슷한 연배 중에는 이미 물 건너간 이가 다수이고 여전히 물을 못 만난 이들도 수두룩한데 데뷔한 지 20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그는 물이 올라 있다.

'서세원의 시대' 를 밀고가는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무대 장악력에서 그는 지존이다. 순발력의 황제다. 햄릿보다는 돈키호테에 가깝고 실수조차 결코 관객을 부담스럽게 만들지 않는다.

편안한 이미지는 해묵어도 싫증나지 않는 그의 재산이다. 독서열 또한 이미 방송가에 정평이 나있다.

상대를 긴장에서 해제시키는 독심술의 상당 부분은 꾸준한 책 읽기에서 따온 열매라고 그를 아는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혹은 종합된 비장의 핵무기는 바로 두려움 없는 그의 입담이다.

말장난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경솔한 예단이다. 말장난은 손장난이나 불장난보다 덜 위험하고 더 재미있다. 자유로움과 자연스러움이 녹아 있을수록 그것은 빛을 발한다.

말장난은 말로 장난치는 게 아니다. 고도의 정신력으로 세상을 조롱하거나 훈계하는 행위다. 지나치면 곤란하다고 말하는데 그런 말이야말로 일종의 말장난이다. 지나친 것치고 좋은 게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예절조차도 지나친 것은 아름답지 않다. 따라서 적당한 말장난은 개인의 정서순화는 물론 사회정화에도 도움을 준다.

그의 이름을 딴 '서세원쇼' 는 두 개의 꼭지로 구성되는데 화제가 되는 건 단연 '토크박스' 다. 말깨나 하는 연예인 치고 이 코너에 초대되지 않은 이를 찾기 힘들다. 여기서 그 숨은 기량이 발견(발굴)돼 여기저기 다른 프로그램에 불려다니는 연예인도 부지기수다. 편성의 비무장지대여서인지(MBC와 SBS는 서로 짠 건지 함께 피한 건지 모두 시사교양 종목이다)시청률도 가위 독보적이다.

하. 지. 만. 시간 앞에 장사 없다고 했던가. 수십 고개를 넘어오면서 천하의 서세원도 이따금 지친 모습을 보인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건 단순히 투자의 전략만은 아니다.

서세원이 그의 재능과 정열을 4개 다른 바구니에 나눠 담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의 포트폴리오 전략은 수정돼야 할 시점에 이른 듯하다. 그에게선 얼핏 방전의 냄새가 난다.

'박수칠 때 떠나라' 는 원래 농촌드라마 '전원일기' 첫회의 부제였는데 요즘 동일한 제목의 연극도 공연되고 있다. 진정한 꾀는 때를 잘 다스리는 것이다.

그는 지혜롭고 너그러운 자이므로 행여 오해하지 않으리라 믿는다(사실 그는 나의 오랜 친구다). 아주 떠나라는 게 아니고 충전해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라는 뜻임을 그가 모를 리 없다.

한국방송의 3대 고질병은 벗기기와 베끼기와 겹치기다. 벗기기는 인간성을 마모시키고 베끼기는 창의성을 고갈시킨다. 겹치기는 실행하는 자나 지켜보는 자 모두를 피곤하게 만든다. 즐거움을 뺏는 행위며 나눔의 미덕을 가로채는 행위다. 서세원은 잠시 쉬어라. 아니면 토크박스에 전념하라.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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