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프런트] 연쇄 성폭력범 54명 프로파일링 해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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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임모(35)씨는 임신부와 여중생 등 여성 10여 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2007년 대전고법에서 징역 22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임씨에 대해 “왜곡된 성의식으로 인한 재범의 위험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임씨는 상고하지 않았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한국형사정책연구원(형정원)이 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인 임씨를 면담한 뒤 분석한 특성은 다음과 같았다.

‘미혼이고, 미남형 외모에 근육질 체형. 성격이 활달해 친구가 많음. 그간 4명의 여자 친구를 사귀었음. 이성이 느끼는 호감도는 높은 편.’

연구 결과 이러한 임씨의 특성은 ‘한국형 연쇄성폭력범죄자’의 전형에 가까운 것으로 조사됐다. 연쇄 성폭행범은 보통의 예상처럼 은둔형 외톨이에 이성관계도 서투른 ‘사회 부적응자’가 아니라 오히려 상당수는 사교성이 뛰어나고 자신감에 차있는 ‘훈남’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형정원은 3명 이상의 여성을 대상으로 성폭력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 중인 연쇄성폭력범죄자 54명의 특성을 분석한 보고서를 냈다고 21일 밝혔다. 연구팀은 지난 1년간 성폭행범들과 면담한 결과와 사건기록 등을 토대로 프로파일링 작업을 벌여왔다. 그 결과 연쇄성범죄자의 외모는 ‘호남형’이 많았다. ‘추남형’은 단 2명뿐이었다. 40% 가까이는 ‘미남형’으로 분류됐다.

체격에서도 절반 가까이(48.8%)가 ‘근육질’로 나타났다. 지난 1월 검거된 성폭행 살인범 강호순의 사진이 본지에 공개됐을 때 “예상했던 흉악범의 얼굴이 아니다”라는 반응이 나왔던 것에 상당한 근거가 있었던 셈이다.

이들은 사회생활에도 크게 문제가 없었다고 답했다. “친구가 많다”거나 “몇 명 있다”고 답한 수감자가 70%를 넘었다. 남들이 보는 자신의 성격에 대해도 “활달한 편”이라고 한 응답자가 절반 가까이 됐다. ‘매우 활달한 편’이라는 대답도 17.6%에 달했다.

그렇다면 이성교제는 어떨까. 조사 대상자의 절반 이상은 이성교제 횟수가 ‘1~5회’라고 답했다. ‘6~10회’라고 답한 이도 26.5%에 달했다. 연구팀은 피상적인 1회성 만남이나 성매매 등도 이성교제에 포함시켰을 것으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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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이 자신에 대해 느끼는 호감도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절반가량은 ‘높은 편’이라고 답했다. 처음 보는 이성과 대화도 ‘잘하는 편’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44%에 달했다. 연구책임자인 김지영(심리학) 박사는 “교도소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이뤄진 인터뷰였음에도 ‘친구들이 많다’ ‘여자들이 나를 좋아한다’고 과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가부장적인 사고로 여성에게 입힌 피해를 합리화하는 사례도 있었다. 수차례 여성들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수감 중인 김모(37)씨는 면담에서 “여성들의 가정을 위한 것”이란 궤변을 늘어놓았다. “밤늦게 귀가하는 여자는 겁이 없다. 그 여자가 빨리 들어가야 자식을 돌볼 것이고, 남편은 아침을 먹을 것이다. 내가 겁을 줘서 일찍 들어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범행 대상은 ‘전혀 모르는 사이’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범행 시기는 봄과 여름이 각각 31.3%로 가장 많았다. 범행시간은 ‘자정에서 오전 6시까지’가 절반을 넘었다. 범행은 주로 자신의 직장이나 거주지 부근(55%), 특히 3㎞ 미만(30.2%) 거리에서 저질렀다. 피해자의 가택을 침입하는 수법(47.1%)이 가장 많았다.

이러한 특성은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유형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5건의 성범죄를 저지른 한 수감자는 “술을 마신 곳 근처에서 돌아다니다가 문이 열려 있는 집에 들어가곤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계획적인 성폭행범의 경우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로 범행 장소에 관한 사전 정보를 확보하고 흉기를 소지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했다.

연구팀은 “거주지와 유흥업소가 혼재된 지역, 방범이 허술한 개인주택이나 다세대주택, 여성 혼자 거주하는 것처럼 보이는 집 등에 침입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가 많았다”며 “다수의 연쇄 성범죄자들은 범행 대상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침입하기 좋은 집을 골라 범행에 나섰다”고 분석했다.

박유미 기자

◆프로파일링(Profiling)=범죄 현장을 분석해 범인의 나이, 성격, 직업, 범행 수법을 추론한 뒤 이를 바탕으로 범인을 찾아내는 수사 기법. 이번 조사처럼 특정 유형 범죄자들의 특성을 추려내는 것도 프로파일링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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