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파 포위된 민주당 예산 한발짝도 못 나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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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주당이 국회 회의장 점거를 2년째 이어가고 있다. 민주당이 강공 정치를 펴는 데는 한나라당의 정치력이 부실한 것도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여당 탓만 하기에는 당 내부의 부실한 의사 결정 구조, 반사적 이득 정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점 등 구조적 문제도 심각하다. 중도파 의원들에게선 “충돌 대신 타협으로 예산안을 처리하자는 의견도 적지 않다”며 “하지만 다들 (강경파가) 두려워서 제 목소리를 못 내고 있다”는 한탄을 들을 수 있다.

◆왜 강경 일변도인가=한나라당이 국회 국토해양위에서 4대 강 예산을 기습 처리한 지난 9일까지도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대화와 투쟁을 병행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강래 원내대표는 “날치기에도 예결위 심의는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이튿날 “한나라당과 공범자”(박주선 최고위원), “싸울 땐 싸워야 한다”(박지원 정책위의장)는 비판을 받았다. 다음 날 이 원내대표는 강경노선으로 급선회했다. 정세균 대표도 같은 날 “당분간 원내에서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이 같은 내홍은 원내교섭을 주도하려는 이 원내대표, 지난 5월 원내대표 경선 당시부터 이 원내대표와 미묘한 경쟁관계인 박 정책위의장, 차기 당권을 노리는 박 최고위원과 차기 대선을 겨냥해 두 달째 장외행보 중인 정세균 대표 간에 누적된 갈등이 폭발한 결과로 당내에선 풀이된다.

지도부가 불협화음을 빚게 되면 당의 결정은 강경노선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게 야당의 생리다. 게다가 내년 초 지방선거(6월) 정국이 개시되면 공천·당권을 둘러싼 당내 갈등이 더욱 심해져 강경노선이 득세할 우려는 더 커진다. 또 유시민 전 장관·무소속 정동영 의원 등 당 밖의 라이벌들을 의식한 선명성 경쟁, ‘타협=굴복’이라는 도식에 익숙한 당내 소장파들의 압박도 강경노선을 부추기는 배경이다.

당에 뚜렷한 비전이 없고, 중도파 의원들이 목소리를 낼 공간이 부족한 현실도 소장파 중심 선명투쟁론의 득세로 이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 지도부는 올해 ‘뉴 민주당 플랜’(5월), ‘생활정치’(11월) 등으로 대안정당 전환을 시도했으나 강경파의 반발에 부닥치자 “민생과 투쟁을 병행한다”는 봉합에 그쳤다. 당의 한 중진 의원은 “예산은 이념 사안이 아닌데도 지도부·소장파·비주류는 ‘밀리면 끝장’이란 태도로 일관한다”며 “최인기 의원·박광태 광주시장 등 당 중진들이 ‘4대 강 무조건 반대’란 당론과는 다른 주장을 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지율 답보=이런 가운데 민주당의 지지율은 7개월째 20%대(모노리서치)에 고정돼 있다. 이철희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수석 애널리스트는 “수권정당 이미지 제고에 실패하며 5월 고(故) 노무현 대통령 서거 직후 올라간 지지율에서 답보상태”라 고 말했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정치학)는 “야당은 여론을 설득해 다수(여당)의 정당성을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야지, 수의 지배를 부정하는 물리적 행동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찬호·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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