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남한말 북한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바벨탑의 전설에는 인간의 오만에 대한 신(神)의 경고가 깔려 있다.

벽돌로 탑을 쌓아 신이 있는 하늘까지 닿겠다는 인간의 무모한 시도를 꺾기 위해 신이 부린 술수가 언어교란이었다.

갑자기 사람마다 쓰는 언어가 달라지니 일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었다. 공사는 자연히 수포로 돌아갔다.

기원 전 3세기 바빌론의 신관(神官)이자 역사가였던 베로수스는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바벨탑의 실패는 세상에 수많은 언어가 출현하는 계기가 됐다" 고 기록, 역사가로서 '오점' 을 남겼다. 바벨탑의 전설은 의사소통 수단으로서 언어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 준다.

지구상에는 약 6천종의 언어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한반도를 중심으로 남북한 7천만 인구가 공용어로 사용하는 한국어는 사용인구로 따져 세계 20위권에 드는 언어다.

계통적으로는 알타이어족으로 분류된다. 같은 어족에 속하는 퉁구스어.몽골어.터키어 등과 구조적 공통성을 보인다고 언어학자들은 말한다.

모음조화와 두음법칙이 그렇고 관계대명사와 성(性)의 구별이 없는 점이 그렇다는 것이다.

터키에서 출발, 바이칼 호수와 몽골.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정착한 셈족의 일파에서 한국어의 기원을 찾는 학설도 있다.

분단 55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똑같은 한국어지만 남한말과 북한말 사이에는 적잖은 차이가 생겼다.

1960년대 중반 김일성(金日成)의 교시로 문화어가 만들어지면서 차이는 더 커졌다.

그 가운데는 이데올로기 냄새를 짙게 풍기는 말도 있지만 순우리말로 곱게 다듬어진 말들도 많다.

끌신(슬리퍼), 얼음보숭이(아이스크림), 물맞이칸(샤워실), 갑작바람(돌풍), 불심지(도화선)등이 그런 예다.

구팡돌(디딤돌), 물레걸음(뒷걸음), 뜨게부부(사실혼부부)처럼 뜻을 헤아리기 어려운 말들도 있지만 의사소통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남북한 정상이 만나 2박3일만에 역사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데는 같은 언어로 의사소통을 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서로 언어가 달라 통역이 필요했다면 그처럼 짧은 시간에 그런 성과를 이뤄낼 수 있었을까. "언어는 한 사회집단이 '협력' 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자의적 음성 상징체계다" 는 미 언어학자 버나드 블로치의 정의가 생각나는 아침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