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는 치명적 괴물, 할리우드 단골 소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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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호 22면

영화 39아웃브레이크39의 한 장면. 중앙포토

가상의 미래, 도시 지하의 비밀 연구소에서 거대 제약회사가 혁신적인 바이러스를 개발한다. 죽은 세포를 되살리는 T바이러스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가 유출되면서 세상은 좀비들이 바글거리는 악몽의 공간이 되고 만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 나선 미모의 여전사는 좀비와 회사 양쪽을 상대로 끝없는 사투를 벌인다. 3편까지 나와 있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간단한 줄거리다. 흑백이 컬러로, 조잡한 특수효과가 정교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바뀌었지만 설정과 스토리는 공포영화의 원조인 ‘프랑켄슈타인’(제임스 웨일 감독, 1931년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친 박사가 제약회사로, 괴물을 되살린 번개가 바이러스로 바뀌었을 뿐이다.

영화 속의 바이러스

바이러스는 보이지 않으면서 전염성이 강하다. 사람에게 치명적인 경우도 많다. 감염됐는지 안 됐는지를 겉으로 구분할 수 없을 때도 적지 않다. 공포영화나 SF영화의 소재로 안성맞춤이다. 스토리는 뻔한 게 많다.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비밀리에 개발되거나 외계에서 날아오면서 지구 멸망의 위기가 찾아오고, 여기에 맞서는 영웅의 활약이 시작된다. 대개는 바이러스를 물리치고 평화를 되찾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윌 스미스가 등장하는 ‘나는 전설이다’는 바이러스에 감염돼 좀비 천지가 돼 버린 뉴욕을 무대로 백신을 개발하는 한 과학자의 이야기다. 2007년 개봉한 ‘인베이젼’에선 바이러스 형태를 띤 외계 생물체가 인류를 전혀 다른 족속으로 바꿔 놓는다. 정신과 의사 캐롤(니콜 키드먼 분)은 백신 개발에 필요한 면역력을 가진 아들을 보호하며 필사의 탈출을 감행한다. 브래드 피트와 브루스 윌리스는 영화 ‘12몽키즈’에서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며 바이러스의 창궐을 막아보려는 헛된 노력을 한다.

바이러스는 종종 인간성을 시험하는 리트머스시험지로 등장하기도 한다. 바이러스 자체보다는 사회가 붕괴됐을 때 드러나는 인간성의 상실이 더 무섭다는 메시지를 담아 내는 영화들이 그렇다.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바이러스에 유일하게 면역돼 있는 의사의 아내(줄리언 무어 분)가 등장하는 2008년 작 ‘눈먼 자들의 도시’, 사람의 공격성을 자극하는 정체 불명의 바이러스에 한 대원이 감염되면서 GP라는 폐쇄공간에서 증폭되는 공포감을 그린 한국영화 ‘GP506’ 등이다.

‘레지던트 이블’의 여주인공 밀라 요요비치가 등장한 ‘울트라 바이올렛’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 사이의 적대와 증오를 그린다. 샤를리즈 테론이 출연한 ‘이온 플럭스’는 바이러스로 99%의 인구가 사망한 먼 미래에 백신으로 생존한 소수의 사람들이 자기 복제를 통해 생명을 이어간다는 얘기다.

의외의 변수나 열어서는 안 될 ‘판도라의 상자’로 바이러스가 등장하는 영화도 있다.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은 ‘우주전쟁’(2005년)에서 지구인을 이 잡듯 하던 외계인들은 바이러스 때문에 허무하게 쓰러진다. 크루즈는 ‘미션 임파서블 2’에서 치명적인 키메라 바이러스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거대 제약사와 한판 대결을 펼친다. ‘패트리어트’(1998)는 초강력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테러집단의 음모를 깨뜨리는 스티븐 시걸의 액션 영화다.

가장 사실적인 바이러스 영화로 꼽히는 것은 ‘아웃브레이크’(1995년)다. 전쟁영화의 명작 ‘특전 유보트’(1981년)를 만든 볼프강 페터젠이 감독을 맡았다. 미 육군 샘 대령(더스틴 호프먼 분)이 아프리카 오지에서 나타나 미국으로 확산된 바이러스성 출혈열과 맞서 싸우는 과정을 그렸다. 변형 에볼라 바이러스가 동물을 통해 전염되고, 병원 직원의 실수로 사람들에게 확산되는 따위의 상황이 신종 플루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과 꽤나 닮아 있다. 끝도 없는 바이러스 소재 영화, 인류가 그만큼 공포와 관심을 갖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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