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하는 조직이 강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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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호 30면

허정무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나는 히딩크 전 국가대표 감독처럼 ‘경쟁’을 핵심 키워드로 삼은 것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허 감독은 팀 내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경기 때마다 새로운 선수를 팀에 합류시켜 주전 경쟁을 부채질하는데, 아무리 경험이 많고 지명도가 높은 선수라도 경기에서 제대로 역할을 해 내지 못하면 다음 경기 때 부르지 않는다. 그는 또 선수들에게 경기 중 개인이 아니라 팀으로 활동하라고 요구한다. 경쟁을 촉진하되 그 경쟁이 철저하게 팀 전력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작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신현만의 인재경영

경쟁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것은 새로운 게 아니다. 경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널리 알려진 조직운영 방식이고 기업에서도 자주 쓰인다. 그러나 기업 경영자들, 특히 한국의 경영자들에겐 경쟁은 매우 다루기 힘든 도구여서 경쟁을 활용하는 기업인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경영자들이 경쟁을 활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후보자가 적기 때문이다. 경쟁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기업에서는 경쟁이 가능한 후보자들이 많지 않다. 상대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조직문화에다 경쟁의 부작용을 우려해 조직 차원에서 경쟁의 싹을 잘라버리기 때문이다. 두 감독의 경우도 초기에 후보자 부족 때문에 신인선수 발굴에 주력해야 했다. 따라서 경쟁을 활용하려면 무엇보다도 후보자 발굴이 중요한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후보자 발굴 때 후보자의 수 못지않게 수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후보자가 많아도 실력차가 너무 크면 경쟁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경영자는 실질적 경쟁이 이뤄지도록 유력 후보자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 내부에 후보자가 부족하다면 과감하게 영입해야 한다.

경영자들이 경쟁을 기피하는 두 번째 이유는 성과에 대한 조급한 기대다. 경쟁을 위해 내부 직원을 발탁하거나 외부 인재를 영입하면 일시적으로 조직력이 약화돼 성과가 부진하게 된다. 많은 경영자들이 이런 상황 때문에 경쟁을 포기한다. 그러나 경쟁이 조직문화로 자리 잡으면 조직력은 금방 회복된다. 두 감독이 경쟁을 유도하던 초기에도 대표팀은 신인선수가 많아 팀 전력이 약해졌다. 이 때문에 경기에서 지는 경우가 많았고 감독들은 비난과 퇴진 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신인선수들이 주전으로 자리 잡고 경륜 있는 선수들 역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면서 팀 전력은 빠르게 회복됐다.

경영자들이 경쟁을 망설이는 또 하나의 이유는 탈락자 처리가 어렵다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경합한 후보는 대개 선택된 후보 못지않은 능력을 가졌고 많은 성과로 조직발전에 기여해 왔다. 이 때문에 조직 구성원은 물론이고 고객들로부터 상당한 신뢰를 받고 있다. 특히 그는 경영자들과도 오랜 관계를 맺어 왔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패자를 내보내는 ‘가혹한’ 결정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조직이 흔들릴 수도 있고, 고객과의 관계가 훼손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조직에 계속 둘 경우 갈등과 긴장 관계가 계속돼 부작용이 나타난다. 결국 선택되지 못한 사람은 내보내거나 멀찍이 보낼 수밖에 없는데 경영자로서는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심정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이것은 경영자의 숙명이다. 결코 피할 수 없다.

내가 글로벌 기업을 접할 때마다 부러웠던 점은 조직 내 경쟁이 체화돼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에선 모든 자리에 직급 상한선이 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 승진하고 연봉이 올라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승진하려면 더 복잡하고 어려운 직무를 수행하는 더 높은 직급의 다른 자리로 옮겨야 한다. 이를 위해선 그 직무를 맡을 수 있도록 역량을 쌓아야 한다. 승진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 오래 머무르면 되지 않을까? 불가능하다. 모든 자리엔 후임자가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새로운 자리에 배치되면 그는 인사팀과 협의해 자기 자리의 후임자를 정해야 한다. 후임자가 정해지면 그들과 경쟁하는 게 불가피해진다.

세계적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은 경쟁으로 조직의 긴장감을 불어넣고 많은 성과를 이뤄냈다. 특히 CEO 등 주요 자리의 후계자를 정할 때는 마지막까지 팽팽한 경쟁상황을 유지하도록 애를 썼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CEO 승계를 위해 3~10명의 후보를 선정해 경쟁시키는데, 후보들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경영 자질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한다. GE의 전 CEO 잭 웰치는 7년간 15명의 후보를 경쟁시키다 최종 후보를 3명으로 좁혀 마지막까지 경쟁하게 만들었다.

인사의 계절이다. 기업마다 올해 성과를 평가하고 내년을 설계하면서 임직원을 들여다 볼 때다. 새해를 설계하는 경영자들이 경쟁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산성이 낮거나 정체돼 있다면 ‘혹시 조직 안에 경쟁이 사라진 게 아닌가’ 조사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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