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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힘을 준 장애인 친구들은 ‘영웅’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45호 35면

언제부턴가 매년 11월이면 ‘연예계 11월 괴담’에 관한 기사가 올라온다. 그 안에는 꼭 내 이름도 포함돼 있다. 그 이유는 2000년 11월 9일 낮 2시쯤, 내게 들이닥친 교통사고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나 강원래는 휠체어를 탄, 가슴 아래로는 내 스스로 느낄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지체1급 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On Sunday 기획칼럼 ‘당신이 행복입니다’

9년 전 그날을 떠올리면 ‘오늘 하루 일어나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실감한다. 무대에서 미친 듯이 날뛰고 있어야 할 내가 간호사들이 감각 없는 내 다리를 들고 대소변 치우는 걸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다니. 하루아침에 망가진 내 몸보다 견디기 힘든 건 부모님과 송이, 준엽이, 내 주변의 친구들이 모두 나 때문에 슬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좌절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나와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집에서 인터넷을 뒤졌다. 장애인 동호회 사이트에 접속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터넷채팅이란 것을 했는데 강원래라는 실명으로 접속을 하자 사람들은 믿지 않거나 거리감을 느끼는 듯 했다. 그러다 누군가 “연예인 oo와 xx가 정말 사귀어요?”라는 질문을 했고 나는 알지도 못하는 연예인 이야기를 해주며 그들과 가까워졌다. 연예인 이야기 한 번 해주고, 장애인으로 사는 노하우 한 번 묻고 하며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사람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장애인들을 만나왔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세상에 별의별 종류의 사람이 있듯이 장애도 참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이라는 한 단어로 묶여 있지만 각자가 겪는 불편함도 서러움도 제각각이다. 그들을 만나며 배운 중요한 하나는, 내가 비록 가슴 아래로 느끼거나 걸을 수는 없지만 여전히 할 수 없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고,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신나는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내 생각을 자유롭게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다. 내게 이런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해준 사람들, 그래서 내가 다시 행복한 꿈을 꿀 수 있게 해준 사람들. 나는 그들을 영웅이라 부른다.

그 영웅들과 함께 다시 시작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2년째 전국 순회공연을 하고 있는 꿍따리유랑단이다. 마치 어릴 때 즐겨 읽던 무협소설의 주인공이 다른 영웅들을 모아 큰 일을 이루듯이 그동안 내가 만나고 힘을 얻었던 장애인 친구들을 불러모았다. 한 팔의 한국 무에타이 챔피언, 시각장애를 가진 연극연출가, 청각장애인 댄서, 한 손 마술사, 1m10㎝ 키의 트로트 가수, 휠체어를 탄 성우 지망생, 발성 장애를 겪고 있는 후배 가수가 그들이다. 어둠이 있기에 빛이 더 밝게 느껴지고, 악이 있기에 선이 더 좋은 것 이듯 좌절을 겪었지만 다시 일어선 그들과 함께 서는 무대이기에 관객들로부터 진심 어린 박수를 받을 때면 비록 가수 클론 시절보다는 적은 박수일지라도, 작은 함성일지라도 그 의미는 더 빛이 난다. 지금 그들과 함께하는 내 인생은 힘든 시간을 겪고 다시 찾은 행복이기에 나는 이 노래를 다시 힘차게 부른다. 꿍따리샤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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