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호혜주의의 경쟁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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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어떤 종류의 새들은 머리에 진드기가 서식한다.

두피(頭皮)에 달라붙은 진드기를 부리로 제거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발로 털어내는 지혜도 갖고 있지 못할 때 새는 어떻게 해야 할까. 유일한 방법은 동료 새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이 경우 새 집단은 세 부류로 나뉜다. 남을 도와주기만 할 뿐 자기는 도움받지 못하는 '선심파' , 남의 도움만 받지 자기는 돕지 않는 '이기(利己)파' , 남이 도와줄 때에 한해 자기도 돕는 '호혜(互惠)파' 다.

1970년대 후반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액셀로드는 이런 상황을 인간사회에 적용해 게임이론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공개모집을 통해 내로라 하는 전문가들로부터 다양한 대인(對人) 교섭전략을 제출받아 대형 컴퓨터에 넣어 대결시켰다.

그 결과 매번 종합우승을 차지한 것은 캐나다 토론토대의 수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아나톨 라포포트의 '나이스(nice)' 전략이었다.

나이스 전략은 의외로 단순하다. '언제나 남을 도울 작정으로 게임을 시작한다. 남이 나를 도우면 나도 돕는다. 그러나 남이 배신해 나를 돕지 않으면 다음에는 나도 도와주지 않는다.'로, 이런 간명한 전략이 복잡하고 교활한 수많은 경쟁 프로그램을 물리치고 최강으로 입증된 것이다.

새의 경우 호혜파가 가장 경쟁력이 있는 셈이다.

'진드기 잡기' 게임은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 게임과도 유사한 면이 있다.

원래 러시아 태생으로 음악가이기도 한 라포포트는 이같은 발상을 평화이론에도 접목시켜 북미에서 손꼽히는 평화연구가로 활약했다.

동물행동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나이스 전략에 대해 '제3차 세계대전을 저지하기 위해서도 연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고 그의 저서에 썼다.

나이스 전략은 바꿔 말하면 '호혜적 이기주의' 또는 '호혜적 이타주의' 로 볼 수 있다.

일본의 정신과의사 요리후지 가즈히로(賴藤和寬)는 이를 응용해 몇년 전 '현명한 이기주의를 권함' 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평양 방문은 남북한간 진정한 호혜주의의 시발점이 돼야 한다.

무엇보다 '진정으로 돕겠다는 마음으로' 게임을 시작하는 자세가 중요하지 않을까. 일방적 이기주의나 한쪽만 무제한으로 선심을 베푸는 형태가 돼선 남북 모두에 불행이다.

한반도 주변의 '이기파' 들만 좋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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