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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그 후 지금] 노무현 마지막 자리엔 작은 태극기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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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左)와 부엉이 바위에 놓여있는 태극기(右)

토요일인 지난 12일 정오쯤 찾은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은 평온한 모습이었다.

40여 가구 120여 주민이 사는 작은 마을에 들어서면 뒤쪽에 범상치 않은 바위 두 개가 눈에 들어온다. 높이는 낮지만 더 웅장해 보이는 것이 부엉이바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23일 아침 스스로 몸을 던진 현장이다. 노 전 대통령이 떨어진 지점에는 작은 태극기가 놓여 있다. 해발 100m의 이 바위 위에서 내려다보면 오른쪽은 생가와 사저가 손에 잡힐 듯 한눈에 들어오고 왼쪽은 묘역이 자리잡고 있다.

정토사 수광전에 나란히 모셔진 고 김대중 ·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정

마을회관 옆 주차장에 외부인 차량 70여 대가 꽉 들어차 있었다. 방문객 대부분은 지난 9월 복원을 마친 생가로 향했다. 생가와 사저 사이에는 철망이 설치돼 있었다. 생가를 둘러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사저 앞 경비초소를 지나 묘역으로 발길을 옮겼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이 안장된 묘역은 추가공사를 위한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대신 40여m 앞에 임시 참배소를 마련했다. 참배소 중앙에는 생전에 노 전 대통령이 사저를 찾은 방문객을 맞이하는 사진이 놓여 있었다. 서거 직후에는 문상객이 하루 10만명을 넘었지만 지금은 평일에는 수백명, 주말과 휴일에는 1000여명이 찾는다고 한다.

6개월 남짓한 사이에 달라진 것이 적지 않다.
부엉이바위 200여m 위에 자리잡은 정토사. 일반 사찰의 대웅전 격인 이곳 수광전 안에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이 나란히 모셔져 있다. 노 전 대통령의 고향 선배인 선진규 법사가 '두 전직 대통령이 생전에 보지 못한 영호남 동서화합을 내세에서 성취하기를 기원하며 모셨다'고 한다.

부산에서 왔다는 중년 부부는 "노 전 대통령이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한 뜻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다"며 부엉이바위를 찾은 뒤 정토암에 둘러 조용히 명복을 빌었다.

''봉하마을 친환경쌀 방앗간'' 모습

달라진 모습은 마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10월 하순 마을 앞 벌판에 '봉하마을 친환경쌀 방앗간'이 들어섰다. 이곳 논에서 재배한 벼 420톤을 정미해 '봉하쌀'이라는 브랜드로 전국 각지에 공급하고 있다. 지난해 첫 결실을 거둔 봉하쌀은 올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파종이 1주일 가량 늦어지기도 했지만 오리와 우렁이를 이용한 농법으로 500톤의 벼를 수확했다. 이중 420톤을 영농법인 봉하마을이 높은 가격으로 수매해 '봉하쌀' 브랜드를 팔고 있다. 영농법인 김정호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이 귀향한 가장 큰 목적은 봉하마을을 깨끗하고 아름다운 생태마을의 모델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며 "그 뜻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야 한다" 고 강조했다.

마을회관에서 사저를 거쳐 묘역으로 가는 길 곳곳에 상점이 들어섰다. 그러나 장사는 신통치 않다고 한다. 방문객 대부분 생가와 사저, 묘역, 정토원을 둘러본 후 이내 떠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봉화산 숲가꾸기 사업을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공원으로 지정된 봉화산 231만 평방미터(70만평)를 웰빙 숲으로 가꾸어 방문객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확 달라진 것은 비서관들의 신분이다. 전직 대통령 예우를 위해 임명된 비서관들은 모두 공무원 신분을 벗고 지난 9월 설립한 '재단법인 아름다운 봉하'로 자리를 옮겼다. 아름다운 봉하는 봉하마을 주변 경관 조성과 함게 노 전 대통령 추모사업을 이끈다. 재단 사무국장을 맡은 김경수 전 비서관은 마을을 떠나지 않고 사저 일까지 도맡아 처리하고 있다. 김 사무국장은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 씨는 회사에 복직해 미국으로, 딸 정연 씨는 서울로 제자리를 찾아갔다"고 했다.

노태운 기자

▶ [2009 그후 지금은]
① "아버지" 세 자 남겼던 김홍일 전 의원
② 아사히TV '김정운 사진' 오보, 주인공 배석범씨
③ 회고록 낸 고 장진영 남편 김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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