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추락 참사 버스기사 무자격자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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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16일 경북 경주시 현곡면 남사재에서 승객 30명을 태우고 영천에서 경주로 가던 관광버스가 굴러 17명이 숨졌다. 운전기사 권대근(55)씨를 포함한 나머지 14명 가운데 12명이 중상을 입고 치료 중이다. 경주 관광버스 추락사고 운전기사가 무자격 상태에서 운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통안전공단 대구경북지사 관계자는 17일 “운전기사 권씨가 1991년 6월 18일 운전적성정밀검사에 응시했으나 부적격(5등급)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부적격 판정 후 1개월이 지나면 다시 응시할 수 있지만 권씨는 검사를 포기해 사업용(영업용) 차량을 몰 수 없는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적성정밀검사는 알코올 중독 등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지 보는 인성검사와 위급한 상황에서 대처 능력을 테스트하는 기기검사로 이뤄진다. 규정을 위반할 경우 사업주는 60만원의 과징금을, 운전자는 5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한편 경찰은 운전기사 권씨에게서 “내리막길에 들어서 가속도가 붙으며 중앙선을 침범하게 됐다. 우측으로 핸들을 꺾는 과정에서 차가 좌우로 휘청거리다 추락했다”는 진술을 받아 냈다. 경찰은 “권씨가 경황이 없어 미처 제동을 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해 차량의 결함 여부도 조사하기로 했다.

사망 원인과 관련, 환자를 진료한 경주 굿모닝병원의 박형근(44) 원장은 “사망자 중 심장·폐 기능이 손상되거나 뇌를 다친 사람이 많았다”며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고 추정했다. 사고수습대책본부(본부장 이재웅 경주시 부시장)는 이날 오후 경주실내체육관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하고 유족과 전국전세버스공제조합의 보상협의도 지원키로 했다.

◆1만원짜리 온천관광의 유혹=경찰 등에 따르면 경주 유림마을 노인 30명은 사고 당일인 16일 영천의 건강식품회사 농장을 방문하는 조건으로 1인당 1만원씩 내고 온천과 식당을 들러 오는 여행길에 올랐다. 원래 마을 노인들은 신종 플루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한 관광버스 회사가 이달 초께 1인당 2만5000원에 언양으로 온천관광을 시켜 준다고 제안한 데 동의, 온천관광을 즐길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고 발생 4일 전 건강식품회사 직원이 마을 경로당을 방문해 “한 사람에 1만원씩만 내면 온천관광을 시켜 주겠다”고 유혹해 관광 코스가 바뀌게 됐다고 한다. 영천에 있는 건강식품회사를 방문해야 한다는 조건도 달았다. 노인들은 사고 당일 오전 9시30분쯤 버스 편으로 경주 황성공원을 출발해 첫 코스인 울산시 울주군 범서면 온천장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3시간가량 온천욕을 즐긴 일행은 언양의 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오리고기로 점심을 먹었다. 식사 후 언양에서 곧바로 영천 청통으로 달려간 버스는 건강식품회사에 노인들을 내려놓았다. 노인들은 이곳에서 회사 측 관계자로부터 건강식품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이 중 일부는 ‘사슴 생녹용’과 ‘산삼 배양균 진액 골드’ 2개 제품을 27만원에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인들은 식품회사를 방문한 뒤 영천에서 칼국수로 요기를 하고 오후 5시쯤 경주 유림마을로 돌아가다 변을 당했다.  

경주=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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