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전국대학평가] 2. 의료개방 앞두고 한의학계도 비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이대로 가면 한의학이 중의학에 잠식당한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따라 의료개방이 가속화하면서 국내 한의학계에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중앙일보는 언론 사상 처음으로 중국 중의학과 한의학 간의 객관적인 실체에 대한 비교평가를 했다. 중국 국가중의약관리국의 최신 통계자료(2003 전국중의약통계적편)에 근거했다. 그 결과 양적으로는 이미 한의학과 중의학 사이의 격차가 10배 이상 벌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5년제 이상 대학교 수는 중국이 한국의 세배 수준이지만 신입생 수와 총재학생 수는 한국의 각각 19배, 13배였다.

교수 수(한국의 13배).장서보유량(8배).연간 기자재투자비(12배) 지표에서도 격차가 많이 났다. 중의학이 1990년대 후반부터 매년 중의약대학 신입생 수를 50%씩 늘리는 등 국가 주도의 팽창 전략을 펴온 결과다.

반면 질적으로는 한의학이 중의학에 비해 비교 우위에 있다고 볼 만한 대목도 많았다.

11개 한의과대학 교수진의 95%가 박사학위 소지자인 데 반해 중의약대 교수 중 박사학위 소지자는 6.8%에 불과했다. 2003년 한의학.중의학 분야 해외논문 발표 건수도 수적으로는 절대 열세인 한국 교수진이 139편으로 중국(100편)보다 많았다. 중국의 교육시스템이 중의사의 양산에 초점을 두고 있어 박사 배출 수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교수당 박사 배출 수로 분석하면 한국이 교수당 약 0.6명으로 중국(약 0.06명)보다 거꾸로 10배다.

경희대 안규석 교수는 "한의학 교육시스템은 양방도 필수로 가르치며 임상 실습이 충실하다"며 "기초 11개, 임상 13개 전공을 갖춘 한의학에 비해 중의학은 전문화 수준이 낮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질적 우위도 조만간 따라잡힐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중국이 한 해 연구.개발(R&D) 투자비로 한국의 일곱배인 1억6000만위안(약 220억원)을 쓰는 등 중의학에 집중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중의약대학을 비롯해 상하이.광저우 등 주요 성(省)급의 고등중의약대학들은 임상수련의 과정을 포함한 7년제 과정을 속속 설치하고 있다. 국가중의약관리국은 '2010년까지 중의약대학의 신입생 정원을 매년 15%씩 늘린다'는 새로운 교육 개혁안까지 발표했다.

한의학연구원의 임병묵 책임연구원은 "한국은 지난해에야 한의약육성법을 제정해 국가 차원의 투자가 막 시작된 단계"라며 " 한의학의 체계적인 육성을 위해서는 범정부 차원의 국가위원회 신설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