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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사회는 어떤 재능을 아껴야 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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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재능이 워낙 중요하므로, 훌륭한 지도자들은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은 행적을 묻지 않고 기용했다. 당(唐) 태종(太宗)의 용인은 전형적이다. 그의 조정을 채운 명신들 가운데 몇 사람만이 처음부터 그를 따랐다. 나머지는 그의 적들을 섬긴 사람들이었다. 가장 큰 군공(軍功)을 세운 이정(李靖)은 원래 태종의 아버지 고조(高祖)의 적이었다. 바른 말 하는 신하의 상징인 위징(魏徵)은 태종의 형으로 그에게 살해당한 이건성(李建成)의 막료였다. 그렇게 너그럽고 과감한 용인이 동양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통치였다고 일컬어지는 ‘정관지치(貞觀之治)’의 바탕이었다.

현대의 시장 경제에서 가장 귀중한 재능은 아마도 ‘기업가의 자질(entrepreneurship)’일 것이다. 사회 발전은 경제의 지속적 성장 위에서만 가능하고, 경제의 꾸준한 성장은 기업가들이 자원을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함으로써 가능하다. 기업가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가능성을 알아보고 그것을 실현한다. 그들은 기업들을 세우고 일자리들을 만들어낸다. 그런 뜻에서 기업가들은 사회의 변경을 넓히는 사람들이다.

기업가의 자질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은 기꺼이 위험을 지려는 태도다. 대부분의 사람은 위험 회피자(risk-averter)다. 그들은 위험한 창업보다는 안전한 직장에서의 근무를 선호한다. 기업가들은 좋은 기회가 오면 서슴지 않고 위험을 진다. 그런 위험 부담자(risk-taker)들 덕분에 사회가 발전하고 일자리들이 생기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 젊은이들은 직업과 직장을 고를 때 비정상적으로 위험을 두려워한다. 일자리를 잃을 위험이 작은 공직에 모두 매달리는 풍조는 건강한 사회의 징후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이병철 회장이나 정주영 회장과 같은 전설적 기업가들을 배출하지 못하고 중견 기업들이 삼성이나 LG와 같은 대기업으로 발돋움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기업가에 관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기업가는 태어나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업가는 야심차고 과감하고 끈질기고 임기응변에 능해야 한다. 그런 자질은 사람이 지니고 태어나지 뒤에 훈련을 통해 얻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기업가들이 드문 것이다. 뛰어난 기업가들은 정말로 드물다. 당연히, 우리는 뛰어난 기업가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이 활동할 자리를 한껏 늘려야 한다.

안타깝게도, 사정은 전혀 다르다. 재벌은 그동안 ‘사회적 악한’ 노릇을 해왔고 많은 일자리들을 만들어낸 기업가들은 질시를 받는다. 이런 사정은 노무현 정권 아래서 악화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강남, 명문대, 재벌’로 상징되는 소수의 ‘가진 자들’을 다수의 질시의 대상으로 삼아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려 했고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기업가들을 이렇게 냉대하는 것은 경제적 침체와 사회적 불안을 부르는 처방이다.

요즈음 삼성 이건희 회장의 사면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들린다. 2018년 동계 올림픽을 평창에 유치하는 데 이 회장의 활동이 긴요하다는 얘기다. 올림픽 유치가 중요하므로, 그것만으로도 이 회장의 사면은 정당화될 수 있을 터이다.

그러나 그런 고려 사항은 실은 사소하다, 우리 사회의 가장 뛰어난 기업가가 가장 큰 기업 집단을 다시 이끌도록 한다는 것에 비기면. 오랫동안 삼성은 한국 경제의 기함(旗艦)이었다. 이름난 외국 기업들을 보면, 우리는 ‘우리에게도 삼성전자가 있지’하고 위안을 삼았다. 이 회장은 그 배의 선장으로서 실질적으로 한국 선단 전체를 이끌었다. 우리가 작은 성취에 만족하면, 그는 “10년 뒤에 무엇을 먹고살 것인지 걱정해야 한다”고 온 나라를 일깨웠다.

세계의 가장 뛰어난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세계적 기업인지라, 삼성의 경우엔 수성이 창업보다 오히려 어렵다. 이 회장의 지도 아래 삼성은 수성의 차원을 넘어 정상에 올랐다. 그렇게 검증된 기업가를 오래 묶어 놓는 일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겠는가?

다행스럽게도, 그가 배에서 내린 뒤에도 삼성은 별탈 없이 항해했다. 그러나 그의 지휘 없이 새로운 항로 찾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파도가 더욱 거친 바다를 헤쳐야 할 삼성이 자질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은 선장을 다시 맞도록 하는 것은 두루 좋은 결단일 것이다.

복거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