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산책] 국제 이혼 이젠 쉽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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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프랑스인 남편과 독일인 부인이 이혼하려면 어느 나라 법원에 소송을 내야 할까.

이웃 나라를 제집 드나들듯 하는 유럽인들에게 국제결혼이나 이혼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다.

그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국적이 다른 부부 사이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나라마다 법규가 달라 자녀 양육권 등을 놓고 정반대의 판결이 나오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가정사가 외교문제로 비화하는 사례까지 있다. 1998년 프랑스 여성 콜레트 랑스랭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녀의 남편인 독일 국적의 아르민 티에만은 이혼소송 중이던 부인으로부터 두 자녀를 빼앗아 독일로 달아났다.

독일 법원은 납치 피해자의 즉각적 본국 송환을 규정한 80년 헤이그 협약을 무시하고 두 아이를 남편이 보호하도록 판결했다.

우여곡절 끝에 남편의 납치(□) 혐의가 인정돼 아이들은 프랑스의 엄마 품으로 보내졌지만 이 문제는 양국의 감정 싸움으로 번졌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98년말 포츠담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에서 독일 법원의 판결을 '강도 행위' 라며 맹비난했다.

유럽 대륙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이 '다국적 이혼' 이 앞으로는 보다 명쾌하게 해결될 전망이다.

유럽연합(EU) 법무장관들은 지난달 30일 EU 집행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EU 규칙을 제정했다.

국적이 다른 부부가 이혼하면 부부의 거주지를 관할하는 법원이 이혼 허락과 자녀 양육권의 귀속 문제 등을 결정할 권한을 갖도록 한 것이다.

내년 3월 1일부터 시행되는 새 규칙은 97년 체결된 암스테르담 조약의 사법규칙 조항에 따라 의회 비준 없이도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사법규칙 조항의 유일한 예외국인 덴마크도 EU와 별도의 협약을 해 다국적 이혼문제 만큼은 규칙을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EU 회원국간 법규 차이로 문제가 되고 있는 다국적 이혼소송은 국가별로 60~1백50건 정도로 추산된다.

하지만 일부에선 이번 규칙이 시행되면 이혼절차가 훨씬 수월해져 가뜩이나 높은 유럽의 이혼율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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