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휴전선이 있었네] 4.우리 탓은 아니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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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한반도에 살고 있는 세계사적 의의를 나는 느낀다.

이 지구상에 남아 있는 마지막 냉전의 고아국. 부모라 한들, 자식이라 한들 만날 수 없는 완벽한 단절의 나라에 살고 있는 세계사적 의의 말이다.

그런 세계사의 한복판에 놓여 있는 휴전선을 찾아가는 길에는 늦은 봄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팝콘을 튀겨놓은 듯한 조팝나무 흰 꽃이 골짜기마다 그득한 산야, 산마다 아름다웠고 물마다 깊었으며 여린 신록 사이로 산 복숭아꽃의 진한 분홍빛이 긴 손가락을 도도히 뻗치고 있었다.

봄이 아니었다면, 꽃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어쩌면 어느 산 GP(Guard Post.비무장지대 안에 설치돼 있는 남측 경비초소)모퉁이에선가 주저않아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연은 긴 겨울을 넘기고 살아 일제히 젊게 피어나는데 사랑을 배우고 아기를 낳아서 사람을 생산해야 할 젊은이들이 남과 북에서 서로를 겨누는 훈련을 받고 있는 게 나는 안쓰러웠던 게다.

그 시간 다른 나라의 젊은이들이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며 창조에 몰두하고 있을 생각을 하니 더 그랬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이라고 했던가. 책에서 읽고 TV로 보아온 분단은 처음으로 내게 생생하게 다가왔다.

작은 한반도의 여윈 허리를 가로지르며 세워진 철조망도, 망원경을 들이대면 섬세하게 보이는 북측 젊은이들의 자태도, 곳곳에 세워진 지뢰 표지판과 덤불에 가려진 포탄도 모두 다 내게는 낯설기만 한, 그러나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한국전쟁 50년, 총기들은 거둬지지 않고 날마다 신형으로 바뀌었으며 녹슨 철조망은 새로이 정비되었다.

그때 젊었던 이들이 후방으로 돌아와 늙어가는 동안, 그들의 아들들과 아들들의 아들들이 이제 그 자리에 다시 서 있다.

한때 그곳은 나의 친구들이 학교의 시위현장에서 끌려가 배치되었던 부대. 그래서 대개는 무사히, 더러는 죽음으로 돌아온 그 부대들을 지날 때마다 나는 가만히 옛 친구들의 이름을 불렀다.

너희가 여기서 조국의 현실을 보았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서로 합쳐지지 않는 한 나의 아들들이 이곳으로 올 것이다.

나는 나의 아들과 남의 아들들이 더 이상 총기를 들고 서로를 겨누기를 원치 않지만 아마도 그것은 어미 된 자의 순진한 희망사항이기에 분단은 내게 그렇게 다시 현실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그 휴전선 부근에서 조금치의 긴장도 느끼지 못했다.

그곳에 있는 병사들과 젊은 장교들의 맑은 얼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현대과학의 꽃인 그 최신식 무기들의 성능에 내가 무지한 탓이었을까. 장전된 총, 그게 누구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그래서 그 가족들에게 영원한 고통을 남겨줄 무기들도 그랬다.

전선을 가로질러 닷새 만에 금강산 전망대에 도착했을 때는 멀리 해금강을 바라보면서 이상한 정적과 평화를 느끼는 내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조용히 날개를 접으며 까마귀가 내려앉고 어린 고사리들이 피어나는 그땅 자연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무구(無垢)했다. 그러나 이 휴전선의 정적을 대가(代價)로 사람들은 오히려 남과 북의 후방에서 더 많이 희생되지 않았나 싶다.

가족과 찢겨지고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마저 박탈당한 채. 그러므로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선에서 돌아온 후 누군가 물었다.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았느냐고.

1백55마일이라는 서구의 도량형으로 계산된 그 전선을 지나면서 가슴 아리지 않았던 장면이 있을까마는 판문점 유리창 너머에서 본 북한 병사의 앳된 얼굴과 작은 키,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보았던 서해의 야생 평원, 궁예(弓裔)가 도읍을 정해 정토(淨土)를 꿈꾸었던 드넓은 철원평야, 금강산을 향해 달리다가 끊어진 철길에 내리던 봄 비, 거의 60도 각도가 되는 길을 케이블카를 타듯이 올라갔던 계웅산(鷄雄山.6백4m)OP, 바람이 우리가 탄 지프를 날려버릴 듯이 불던 건봉산(乾鳳山.9백11m)OP….

돌멩이도 날려버린다는 바람 속에서 노역(勞役)을 하고 있던 어린 병사들의 얼굴이 저쪽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을 북쪽 병사들의 얼굴과 겹쳐 다가와서, 지뢰밭 저만치에 홀로 피어 있는 아기 진달래로도 마음은 달래지지가 않았다.

'대체 이게 다 무슨 짓들이지' 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분단은 미움을 낳았고 미움은 전쟁을 낳았으며 전쟁은 다시 미움을 낳았다.

이 냉혹한 현실을, 그것이 세계사에 뒤떨어지는 것이니 걷어치우라고 순진하게 외친다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것은 분명 우리 탓이 아니었지만 이제 우리의 몫이 된 것만은 틀림없으니까. 돌아오는 날 신문에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로비스트들의 얼굴이 실려 있었다. 그들이 로비한 사업의 규모가 2천2백억원이라고.

그러나 이상하게 잘도 싸우던 야당도 여당도 모두 휴전선에서 북녘의 산처럼 침묵하고 있었다.

나는 문득 향로봉과 건봉산 혹은 계웅산 GP에서 보았던 바람 때문에 자주 깨져나간다는 그 유리창을 생각했다. 바람에 늙어버린 창틀 사이로 스며든 냉기는 우리 젊은이들의 얼굴을 할퀴어 댔으리라.

내가 묻자 젊은 병사는 의젓하게 대꾸했다.

"괜찮습니다. " 정치도 모르고 군 감청(監聽)장치의 현대화라는 '백두사업' (감청용 정찰기 도입사업)에 대해서도 무지한 나는 우리 새시 기술이 거의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하던데 그 돈의 일부라도 그 유리창 새시를 현대적인 것으로 바꾸는 데 쓰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분단의 현실이 젊은이들을 할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바람만은 그렇지 않았으면 싶었던 게다.

우리에게 맛있는 밥을 만들어 주고 누룽지도 튀겨 주었던 취사병들, 혹여 우리 때문에 때아닌 작업을 더 했을지도 모르는 장병들, 보고 싶은 아내와 어린아이들 얼굴을 한달에 한번 정도씩 본다는 젊은 대대장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

그들의 얼굴에서 평화를 위한 열망을 보지 않았던들 내게는 그 여정이 몹시 힘겨웠을 것이다. 혹여 훗날 두만강가나 압록강가 한가로운 초소에서 그들의 얼굴과 반갑게 해후(邂逅)할 날을 기원하며.

공지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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