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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버로 300야드 날리는 17세 소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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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미셸 위의 장타를 보고 놀랄 것 없다. 드라이버로 300야드를 날리는 17세 소녀가 한국에 있다. 이정민. 미국 아마추어 메이저 대회를 제패한 그가 내년엔 프로무대에 뛰어든다. 다음은 중앙SUNDAY 기사 전문.

1m73㎝의 늘씬한 몸매에 하얀 피부. 프로골퍼가 아니라 모델 지망생 같았다. 다소곳한 태도에 수줍움도 많았다. 하지만 골프에 대해 말할 때는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내년 KLPGA투어에서 ‘루키 돌풍’을 예고한 국가대표 출신 이정민(17·대원외고, 고려대 입학 예정)의 첫인상이다.

이정민은 지난달 27일 전남 무안골프장에서 끝난 2010 KLPGA투어 정규투어 시드 순위전에서 합계 7언더파 4위로 내년 시즌 출전권을 획득했다. 특히 이번 시드전에는 LPGA투어에서 뛰던 해외파들도 대거 출전해 어느 해보다도 경쟁이 치열했다. 특히 마지막 날에는 강한 바람에 대부분의 선수가 고전했지만 이정민은 1언더파로 선전했다.
이정민을 아는 많은 전문가가 그의 드라이브샷을 칭찬했다. 평균 드라이브 거리는 가볍게 270야드를 넘긴다고 했다. 하지만 기자가 직접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었다. 평균 드라이브 거리 270야드로 장타자라고 너스레를 떠는 골퍼들도 막상 필드에서 확인해 보면 평균 250야드를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 4일 안산 제일골프장에서 이정민과 함께 라운드를 했다. 철저한 검증을 위해 골프장에서 가장 거리가 긴 백 티에서 플레이했다. 코스는 중·남 코스. 파72에 총 전장은 6252m(6837야드). 올 시즌 KLPGA투어 대회 평균 코스 전장은 6300~6500야드 정도. 6800야드가 넘는 대회는 없었다.

본지 기자, 제일CC서 동반 라운드
이정민은 1번 홀(파4·356m)에서 티샷이 벙커에 빠지면서 보기를 기록했다. 속으로 ‘역시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섣부른 판단은 다음 홀부터 깨졌다. 몸이 풀리면서 드라이브샷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가볍게 270야드를 넘었고 매홀 버디 기회를 만들었다.

중코스에서 1오버파로 경기를 마친 그는 동코스 4번 홀(파5·530m)에서는 드라이브샷이 300야드를 훌쩍 넘겼다. 전율을 느낄 만큼 호쾌한 드라이브샷이었다. ‘천재 골프소녀’ 미셸 위(20·나이키골프)를 보는 듯했다. 캐디 입에서 감탄사와 ‘굿 샷’이 끊이지 않았다. 캐디도 “여자 선수가 300야드를 넘기는 건 처음 봤다”며 흥분했다. 이 홀에서 그는 가볍게 버디를 잡았다.

그의 클럽 구성은 다른 여성 프로골퍼들과 달랐다. 대부분의 여성 프로가 3, 4번 아이언 대신에 하이브리드 클럽이나 우드를 가지고 다닌다. 그러나 그의 백에서는 3번 아이언은 물론 2번 아이언도 눈에 띄었다. 남성 프로들도 2번 아이언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만큼 다루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시드 순위전에서 맞바람이 불 때 2번 아이언 덕을 많이 봤다. 어려서부터 사용해서 그런지 다른 미들 아이언과 똑같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번 시드 순위전에서 함께 플레이를 한 동반자의 아버지는 “너처럼 롱 아이언을 7번 아이언 치듯이 다루는 여성 골퍼는 처음 봤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맞바람이 부는 5번 홀(파3). 거리는 202m. 그린 앞에는 워터 해저드가 가로막고 있다. 남성들도 이 홀에서는 3번 우드를 잡거나 심지어 드라이버를 잡는 골퍼들도 있다고 캐디 언니가 살짝 귀띔했다. 그는 2번 아이언을 빼들었다. 제트기 소리를 내며 창공을 가른 볼은 워터 해저드를 건너 맞바람을 뚫고 그린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가볍게 파를 기록했다. 맞바람이 더욱 거세진 7번 홀(파3·180m)에서는 3번 아이언으로 가볍게 온 그린에 성공했다. 결국 이날 그는 보기 1개, 버디 1개로 이븐파를 기록했다.

골프백엔 2번, 3번 아이언
그는 어려서부터 운동에 소질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단거리 육상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의 뛰어난 운동신경을 지켜본 체육선생님의 권유로 육상대회에 나갔다가 강남구 대표로 서울시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그의 어머니 박혜경(51)씨는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태권도·수영 등을 가르쳤는데 모두 선생님들이 전문 선수로 키워볼 생각이 없느냐고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던 그는 봉은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 이병희(53)씨를 따라 집 앞 골프연습장에 놀러갔다가 그만 골프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는 골프에서도 쉽게 두각을 나타냈다. 골프를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출전한 제주도지사배 주니어 골프대회에서 80타를 기록하며 예선을 통과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그는 부모에게 전문 골프선수가 되겠다고 말했다. 대기업 임원인 아버지는 반대했다. 힘든 운동보다 공부에 열중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엄한 아버지도 딸의 이 한마디에 결국 포기했다.

“아빠, 나는 골프장 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서 잠이 오지 않아. 나는 골프가 너무 좋아. 골프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아.”

이정민의 부모는 중학교까지는 학업과 골프를 병행시켰다. 어머니 박씨는 “학교에서는 오전 수업만 받았지만 연습이 끝나면 학원과 과외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중학교 때까지 담임선생님이 ‘공부도 잘하는데 왜 힘든 운동을 시키시냐’며 반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본인이 골프를 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하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고 웃었다.

올 정규투어서 ‘톱5’에 세 번 들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대표팀 상비군에 선발된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키가 1m44㎝로 작은 편이었다. 하지만 중2 때부터 일 년에 10㎝ 이상씩 자라기 시작했다. 대원외고로 진학한 그는 2007년 호심배 아마추어골프선수권, 2008년 송암배 아마추어골프선수권에서 우승하며 아마추어 무대를 평정했다. 베스트 스코어는 2007년 익성배에서 기록한 8언더파 64타.

국가대표 자격으로 아홉 차례 출전한 KLPGA투어 대회에도 ‘톱5’에 세 번이나 들었다. 2008년 신지애·안선주·유소연 등 국내 정상급 프로들이 총출동한 KB국민은행스타투어 4차 대회에서는 공동 4위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미국에서 열린 폴로주니어 클래식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 대회는 미국 주니어 랭킹 70위 이내 선수들이 참가하는 메이저 대회다.

이정민은 “이 대회에서 우승하자 미국의 듀크대·USC 등 많은 대학에서 장학금을 지급하겠다는 제의가 들어왔다. 결국 최종 목표는 미국 무대지만 먼저 국내 무대를 정복한 다음에 진출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2부 투어(총 15개 대회)에서 활동했다. 11차전 대회에서는 우승도 했다. 14차전까지 상금랭킹 6위로 3위까지 부여하는 정규투어 시드권을 노려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고려대 면접 때문에 15차전 대회에 불참했다. 대학 진학을 위해 지옥의 시드 순위전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다. 중2 때부터 전문 트레이너를 통해 체력훈련을 받았다. 최씨는 “침착한 편인데 의외로 욱하는 성격이 있어서 한 번 보기를 하면 연속보기를 범하는 경우가 많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심리치료를 받게 했다. 지금은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잘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내년 시즌을 앞두고 주변의 기대가 너무 커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평생 한 번밖에 없는 신인왕은 절대 놓치고 싶지 않다. 정규투어는 일반 무대하고는 또 다를 것이다. 28일부터 태국에서 강도 높은 전지훈련을 통해 기술적·체력적으로 더 강해질 것”이라며 투지를 불태웠다.

내년 KLPGA투어는 국내로 복귀한 해외파들까지 가세하면서 더욱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이다. 이정민이 내년 시즌 냉엄한 프로 무대에서 ‘무서운 신인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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