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정일의 북한…지금 변화중] 16.인사태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북한 김정일(金正日)총비서는 침체된 사회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지난 3년간 고위간부에 대한 대폭적 물갈이 인사를 단행했다.

전문성을 갖춘 젊은 간부를 등용해 느슨해진 기강을 바로잡고 경제회생의 기반을 마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인사태풍은 지방에서 시작했다. 김일성(金日成)주석 사망 이래 국상(國喪)기간이 길어지면서 이렇다 할 인물교체가 없던 북한에서 변화가 시작된 것은 1997년 초 각 도의 농정 책임자인 농촌경리위원장을 전격 교체하면서부터였다.

평안남도.양강도.황해남도 등 6개 도.직할시 농촌경리위원장이 이때 물러났다. 퇴진한 이들은 50년대에 작업반장.분조장으로 일하면서 농촌 협동농장화에 앞장섰던 60~70대층 노력영웅들이었다.

빈 자리에는 실력과 실천력을 겸비한 40~50대로 메웠다. 잇따른 자연재해와 농민의 의욕 상실로 추락을 거듭하던 농정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조치였다.

곧이어 지방사정을 책임지는 도.군당 책임비서 및 인민위원장, 공장.기업소 지배인들이 곳곳에서 교체됐다. 12개 도.직할시 당책임비서 및 인민위원장 가운데 새 얼굴이 80%를 넘어섰다.

간부 교체는 98년 7월 26일에 실시된 최고인민회의 10기 대의원선거에서 두드러졌다. 대의원 6백87명의 64%에 해당하는 4백49명이 교체됐다.

9기 대의원선거 때의 교체폭 31.4%(2백14명)에 비하면 두배가 넘는다. 최근 교체된 공장.기업소 직장장.기사장, 협동농장 관리위원장, 경제기관 실무간부 등이 대의원에 대거 발탁된 결과다.

특히 직맹위원장 주성일과 평남 농촌경리위원장 김낙희의 대의원 탈락은 새 세대 등장의 예고편이었다. 이들은 50년대 전후(戰後) 복구건설과 천리마운동 시기의 노력영웅으로 일곱차례나 대의원을 연임한, 김일성 시대의 상징적인 노동자 출신 간부였다.

중앙간부들도 교체 물결을 타고 있다. 98년 9월 5일 출범한 1차내각에는 50~60대 신진 전문관료들이 대거 승진.등용됐다. 신임 부총리 조창덕(전 채취공업부장)과 곽범기(전 기계공업부장)가 대표적이다. 전문기술관료 출신인 이들은 탄광.공장 노동자로 출발해 기업소 기사.직장장.기사장.지배인을 거쳐 정무원 부장으로 일했었다.

그 외에도 안주탄광기업소 지배인을 하다 전기석탄공업상으로 발탁된 신태록, 방직공업연합 총국장에서 경공업상으로 발탁된 이연수, 전화국 직원에서 출발해 평양중앙전화국장.체신부 부부장을 거쳐 체신상이 된 이금범 등도 내부 승진케이스.

경제관료의 인사바람 와중에 노동당 간부도 예외일 수는 없겠지만 당대회나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개최 소식이 없어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

다만 당조직지도부의 터줏대감 소리를 듣던 문성술.윤승관 제1부부장이 요즘 안보이고 50대 중반의 장성택 제1부부장, 최춘황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등이 金총비서를 늘 수행하며 실세로 부각되고 있다.

군중 동원을 떠맡는 당외곽단체의 중앙간부들 역시 바뀌었다. 민주여성동맹.직업총동맹.농업근로자동맹의 위원장들이 70대에서 50~60대로 연령층이 낮아졌다(여맹 김성애→천연옥, 직맹 주성일→염순길, 농근맹 최성숙→승상섭). 새 인물은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온 '혁명 2세대' 로 金총비서가 70년대에 주도한 '3대혁명 붉은기쟁취운동' 에서 두각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년동맹의 경우 최용해가 위원장에서 물러나고 '혁명 3세대' 인 이일환이 발탁됐다.

최근 떠오르는 인물들은 일부 노간부를 제외하고는 해외유학 경험이 없는 '토종' 출신이다. 60년대에 金총비서와 같이 대학을 다녔거나 조직지도부에서 그와 인연을 맺었던 인물들이 전진배치되고 있는 것이다. 지방책임자인 김운기(황해남도), 이수길(양강도), 김평해(평안북도)등도 그런 예에 속한다.

인사태풍은 金총비서가 자신의 권력기반을 다지는 측면과 맞물려 있다. 새 인물들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해 성과를 거둔다면 인물 교체는 늘어날 전망이다.

특별취재반〓유영구.최원기.정창현.이영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