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단칸방 할머니의 ‘아주 큰 돈 100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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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 10월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 한 섬 두 섬 쌀을 모아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김만덕 나눔쌀 만섬 쌓기’ 행사가 한창이었다. 낡은 점퍼를 걸친 80대 할머니가 나타났다. 그는 자원봉사자 손에 뭔가를 쥐어 주었다. 빳빳한 100만원짜리 수표 한 장을 품은 봉투였다. 깜짝 놀란 봉사자가 할머니를 붙잡고 이름을 물었다. “아이고, 나는 그냥 이름 없는 노인네야.”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봉투 뒤엔 작은 글씨로 ‘박말다’라고만 써 있었다.

주최 측은 행사가 끝난 뒤 남루한 차림에 선뜻 고액을 내고서도 이름조차 남기지 않은 할머니에게 최소한의 보답이라도 하자고 뜻을 모았다. 행방을 쫓기 위한 단서는 ‘박말다’라는 이름과 100만원권 자기앞수표뿐이었다. 수표 직인에 찍힌 은행 지점을 찾아가고 지점 인근의 주민들에게도 일일이 수소문했다. 추적은 두 달 가까이 이어졌다. 그리고 지난주, 선행의 주인공인 박부자(85) 할머니를 찾았다. 지난 11일, 주최 측은 목도리와 겨울옷 등의 선물을 들고 박 할머니가 사는 종로구 사직동 집을 찾았다. 집은 큰 길에서 한참을 올라가야 나왔다. 어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골목길. 여러 번을 굽이굽이 돌았다. 할머니가 사는 곳. 그 집은 전세금 500만원짜리 단칸방이었다.

“오지들 말라니까….”

박 할머니는 여전히 쑥스러워했다.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요란을 떤다”며 어서들 돌아가라고 손짓했다. 할머니에게 기부는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을까. 그는 ‘나눔쌀 쌓기’ 생방송을 보던 중 100만원을 기부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광화문 광장이 우리 집하고 가깝잖아. 방송을 보는데 어려운 이웃을 돕자며 사람들이 많이 몰렸더라고. 한 걸음에 달려나갔지.”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할머니의 세례명은 마르타(말다). 봉투에 ‘박말다’라고 적은 이유였다. 그러나 할머니는 신상과 관련한 단서를 남긴 ‘사고’였다며 자신이 우둔하다고 책망했다. “급하게 나가려니 봉투가 있나. 헌금 내려고 챙겨둔 봉투에 돈을 넣었지. 거기에 이름을 적어둔 걸 잊어먹었지 뭐야.”

이처럼 할머니의 핏속에 기부 본능이 진하게 녹아있지만, 형편은 넉넉지 않다. 함경북도 나남 출신인 할머니. “남편과 결혼한 지 3년 만에 이혼했어. 남대문 시장에서 미군 물건을 팔고 식당 주방에서 일하며 먹고 살았지.” 궁핍한 생활 끝에 67세 부턴 기초생활 수급권자가 됐다. 지금 손에 들어오는 돈은 정부가 주는 월 50만원의 생계지원비가 전부다. 살고 있는 집도 재개발될 예정이라고 했다. “언제 비워줘야 할지 몰라.”

이번에 기부한 100만원은 어디서 났을까. “이사비를 마련하려고 3년간 차곡차곡 적금을 부었지. 500만원을 탔는데 그중 일부야.” 박 할머니는 지난 3월에도 기부를 했다. 사회복지 공동모금회가 벌인 ‘행복한 유산 캠페인’에 참여해 지금 사는 집의 전세금 500만원을 세상을 떠난 뒤 기부하기로 했다. 생계지원비 50만원 중 4만원은 동남아시아 어린이 후원금으로 내고 있다고 했다. 전기장판 한 개로 겨울을 나고 성당의 헌옷 바자회에서 옷을 구하는, 몸에 밴 절약 습관 덕에 그나마 생계를 유지한다.

“나는 나라에서 돈도 주고 도시락도 배달해 주고 그러잖아. 못 먹고 잘 데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박 할머니의 마음은 이름대로 ‘부자’였다.

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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