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 콜] '레이디 맥베스' 열연 정동환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중견 배우 정동환(52)은 성실하다. 연극 무대와 TV를 넘나드는 바쁜 일정에서도 1주일에 연극 한 편은 반드시 찾아본다.

남들의 작품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연극계에 대한 불만도 대담하게 털어놓는다.

"첫째, 내용에 비해 입장료가 비싼 경우가 많아요. 관객에 대한 일종의 사기죠. 연극계에도 상도의가 필요합니다. 둘째, 공짜 초대권을 근절해야 합니다. 연극 1백년을 위해 지금 열흘 정도 모든 극장이 휴관하는 것은 어떨까요. "

반면 그가 출연하고 있는 '레이디 맥베스' (6월 18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02-580-1300)는 예외라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일면 오해를 부를 수 있는 대목이다. 심한 자화자찬은 아닐까.

"가격(1만~1만5천원)에 비해 내용이 충실해요. 연기 인생 30년을 걸고 말할 수 있습니다. 관객들은 무언가 뿌듯한 충족감을 느끼게 될 겁니다." 대단한 자신감이다.

'레이디…' 는 셰익스피어 원작의 '맥베스' 를 연출가 한태숙이 재창작한 작품. 지난해 서울연극제에서 전회 만원사례를 기록한 화제작이다.

원작의 맥베스 부인에게 나타나는 권력욕구와 범죄심리를 속속들이 해부하고 있다.

정동환은 연극에서 궁중의사와 맥베스를 맡았다.

맥베스 부인에 잠재된 사악한 심성을 노출하는 동시에 치료하는 의사와, 부인에게 조종 당하면서도 마침내 권좌의 정상에 오른 장군 맥베스를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지난 20일 공연에서도 그는 광기에 넘치는 맥베스 부인역의 서주희를 능숙하게 이끌며 중견 연기자로서 관록을 보여줬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가변형 인물을 무리없이 소화했다.

"여백이 많은 작품입니다. 배우로서 표현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지요. 선과 악, 소심함과 용맹함 등 인간의 다양한 속성을 극한까지 파고들었습니다. 무대에서 흘린 땀만큼 인물 자체를 자유자재로 연기할 수 있어 즐겁습니다. 일부에선 부담이 크겠다고 말하지만 저로선 대단한 행복입니다."

그럴 만도 하다. '레이디…' 는 배우들의 연기에만 의존하는 일반 사실주의 연극과 달리 밀가루.진흙.물.얼음 등 여러 사물들을 등장인물의 심리상태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타악그룹 공명의 비장한 음향을 극 전체의 분위기를 증폭시키는 도구로 사용하는 독특한 형식의 공연이기 때문. 그렇다고 연기를 경시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 중심엔 배우들의 농익은 몸짓이 자리하고 있다.

"누구나 공감하는 연극을 꿈꿔 왔습니다. 시각 장애인은 소리로, 청각 장애인은 동작으로 이해하는 그런 연극 말입니다. 아직은 성급한 결론 내릴 수 없지만 '레이디…' 는 이런 목표에 접근한 작품입니다. 앞으로도 수정.보완하면서 제 분신 같은 작품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박정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