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앙리가 훼손시킨 리그의 품격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44호 16면

얼마 전 한 모임에서 우스갯소리로 ‘면도기의 저주’란 말이 나왔다. 모 면도기 광고에는 티에리 앙리, 타이거 우즈, 로저 페더러 등 세 명의 월드스타가 모델로 출연했다. 그런데 이 가운데 두 명이 최근 한 달 사이 불미스러운 사건(?)의 주인공이 됐다. 잘 알려진 대로 앙리와 우즈다. 그래서 그들의 잘못이 거론될 때마다 아무 관계도 없는 면도기 광고가 연상된다는 거다.

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139>

앙리는 지난달 아일랜드와의 월드컵 2차 예선에서 손으로 골을 도왔다. 축구에서 고의로 공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건 초등학생도 안다. 앙리는 룰을 모를 리 없는 월드스타다. 그래서 그 핸들링은 명백한 고의였고 속임수였다. 그 골로 프랑스는 본선에 진출했고 아일랜드는 탈락했다. 4명의 심판이 있었지만 앙리의 손은 모두를 속였다. 심판이 잘못된 판정을 내렸지만 국제축구연맹(FIFA)은 ‘그것도 게임의 일부분’이라고 결론지었다.

미국의 대중 주간지 ‘US 위클리’의 지난주 커버는 타이거 우즈 부부였다.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둘 사이에 커버스토리의 카피가 걸렸다. ‘Yes, He cheated.(그가 속인 게 맞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를 발단으로 우즈의 불륜이 만천하에 공개됐다. 우즈가 가진 비중 탓에 주요 언론이 우즈에 대한 비난을 주저하는 사이 다른 매체들이 ‘우즈의 연인’을 릴레이로 공개했다. 우즈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소용없는 듯싶다. 그는 점점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둘이 저지른 잘못은 완전히 다른 성격이요, 내용이다. 앙리는 경기규칙을 어겼고 우즈는 골프와는 아무 관계없는, 사생활에서의 ‘룰(?)’을 어겼다. 거기에 둘의 공통점이 있다. 지킬 걸 지키지 않았고 누군가를 ‘속였다’라는 거다. ‘속임’은 스포츠가 가장 멀리해야 할 단어다. 기본정신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정직한 승부, 정정당당한 경쟁이 전제되지 않는 한, 그건 스포츠가 아니고 야바위가 되고 만다.

미 프로풋볼리그(NFL)는 지난주 신시내티 벵골스의 스타 채드 오초싱코에게 벌금 3만 달러를 부과했다. 기행을 일삼는 괴짜 오초싱코는 디트로이트와의 경기에서 현란한 무늬의 판초에 챙 넓은 멕시코 모자 솜브레로까지 쓰고 벤치에 앉았다. 리그는 규칙 위반이 ‘고의로’ 이뤄졌고 그로 인해 리그의 품위에 상처가 났다고 판단했다.

오초싱코는 그 경기 전 자신의 트위터로 “오늘 뭔가 하려는데 아마 벌금을 받겠지. 그래도 할 만한 일이야”라는 내용을 주위에 알렸다. 그는 지난달 비디오판독을 하는 심판을 향해 1달러짜리 지폐를 꺼내 보이는 행동으로 벌금(2만 달러)을 물기도 했다. 뇌물을 연상시켰다는 것. 죄목은 명료했다. ‘NFL 선수에 맞지 않는 행동’이었다.

앙리와 우즈는 물론이고 오초싱코의 행동 모두 한국 프로야구에 주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우리 프로야구 주변에도 도박·약물 등 리그의 품위와 가치를 훼손할 수 있는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프로야구도 최근 수년간 크고 작은 사고가 그 위험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었다. 그래서 무엇보다 선수들에게 리그의 품위와 가치, 그 고귀함과 중요성을 일깨워줄 교육이 필요하다. 그 노력은 체계적으로 준비되고 지속적으로 실행돼야 한다. 그래야 애써 끌어올린 리그의 품위를 지키고, 가치를 유지·발전시킬 수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