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우리 모두의 '5월'로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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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지 오늘로 20주년이다. 현지에서는 국제학술회의를 비롯한 여러 행사가 열리고 여야 지도자들과 각계 시민들이 망월동(望月洞) 묘역을 참배하는 등 각별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그만큼 광주 민주화 운동은 우리의 짧은 민주화 역정에서 4.19혁명과 함께 권위주의체제에 항거한 시민 저항정신의 한 축으로 기억돼 왔다.

20년 전 5월의 그날들은 우리를 참으로 부끄럽고 아프게 해왔다. 군부정권의 검열에 언론은 침묵해야 했고 전 국민은 사실에의 접근조차 차단당했다.

진실이 왜곡되고 은폐됐던 그 시절은 지식인들에게, 정치인들에게, 그리고 시민들에게 권력에 굴종하며 역사적 현실을 외면한 데 대한 죄의식과 책임을 새삼 일깨워준다.

80년대 민주화 투쟁의 고난과 승리는 결국 광주의 5월이 배태한 민주화 역량을 그 바탕으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신군부에 대한 민주화 투쟁의 원동력이 됐을 뿐 아니라 진보성의 이념으로, 또는 민중에 대한 재인식으로 뻗어나가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사고와 풍습과 문화를 근원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으로 확대됐다.

결국 그러한 민중적 자각이 저변 확산됨으로써 마침내 6.10항쟁으로 이어져 30년 군부통치를 끝장내는 기폭제가 됐던 것이다.

오늘은 이런 모든 것을 되새기고 반성하는 날이 돼야 한다. 그것은 어느 지역, 어느 계층, 그리고 어느 당파의 몫으로 한정될 것이 아니며 우리 국민의 민주화 역량의 성숙과 민주적 인식의 지평 확대로 기록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의 5월이 아직 전국적인 민주화의 노력으로 수용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고립적이고 피해보상 차원에서만 논의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봐야 한다. 특히 광주항쟁은 김대중 정권의 등장으로 그 의미가 종결돼서도 안될 것이다.

그것이 어느 지역의 한풀이나 정파적 한계 속에서만 해석된다면 그 역사적 의미는 쉽게 퇴색해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5.18 항쟁을 전국화하고 영속화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80년대 민주화 10년의 전체적 흐름에 연계하는 노력이 긴요하다.

4.19가 그랬듯 5.18도 부마(釜馬)항쟁이나 다른 민주화 투쟁과 함께 신군부에 저항하는 전국적인 시민투쟁의 맥락에서 이해되고 자리매김돼야 한다.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어느 정도 이뤄진 이 시점에서 광주 시민들도 5.18의 의미를 한풀이적인 굴레에서 풀어내어 개방적이고 화해지향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할 것이다.

5.18묘역을 국립묘지화하고 희생자들을 국가유공자로 대우하는 것도 좋겠지만 광주문제를 보다 균형적이고 폭넓은 시각으로 접근함으로써 광주의 5월을 우리 모두의 5월로 승화시키는 노력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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