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이상훈, 비씨카드배 신인왕 타이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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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비금도(飛禽島)의 형제기사 이상훈3단(25)이 신인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3단은 15일 한국기원에서 벌어진 제10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결승제2국에서 한종진3단을 2백56수만에 백 불계로 눌러 종합전적 2대0으로 우승컵을 차지했다.

동생 이세돌3단(17)도 같은 시각에 31연승을 기록하여 이날은 이들 형제기사에게 최고의 하루가 됐다.

전남 신안군에 가면 비금도라는 섬이 있다. 이곳에서 고깃배를 가지고 있는 이수오씨는 3남2녀를 낳아 큰아들 상훈과 막내 세돌에게 바둑을 가르쳤다.

둘째 딸 세나도 어깨너머로 바둑을 배웠다. 상훈은 15세에 프로가 됐고 거친 파괴력을 지닌 싸움바둑으로 대번에 유망주로 떠올랐다.

그러나 상훈의 동갑내기로 저 유명한 이창호가 버티고 있었다.

이창호는 상훈에게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다가왔고 상훈은 시합에서 지는 날이면 폭음하는 일이 많아졌다.

상훈은 "나는 기재(棋才)가 부족하다. 나보다는 세돌이가 낫다" 며 바둑을 단념한 듯 하더니 곧 군대에 입대했고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1995년 세돌이는 12세로 프로의 관문을 뚫었다. 그의 기재는 과연 탁월하여 이창호라는 천재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손색이 없었다.

세돌이 지닌 조훈현 스타일의 경쾌한 감각과 사나운 전투력은 일류들이 소년기에 보여주는 야생과 도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세돌은 정상 직전에서 번번히 꺾였고 어느 선에 이르자 더이상 나가지 못했다.

군대에 갔다온 상훈이 먼저 달라졌다. 그는 과거와 달리 승부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설령 이창호란 존재를 못 꺾더라도 승부를 업으로 살며 살아가겠다는 자세가 역력했다.

성적이 자꾸 좋아졌다. 많은 프로들이 상훈의 기재는 본시 세돌의 재능에 못하지 않다고 말하곤 했다.

다만 상훈은 이창호의 위세에 눌려 스스로를 저평가했을 뿐이다. 상훈의 변신과 함께 세돌도 점점 강해졌다.

제대후 첫해인 지난해 상훈은 39승17패. 올해는 13승6패. 조훈현9단도 꺾었고 최규병9단도 꺾었다. 힘이 워낙 좋아 누구든 걸려들면 부러졌다.

올해 신인왕전이 시작되면서 그는 유망주들인 조한승3단.백대현4단.최명훈7단 등을 격파하고 윤현석5단마저 제쳐 드디어 결승에 올랐다.

결승전의 상대는 최근 연속 상종가를 치고있는 한종진3단. 상훈은 1국에서 KO승을 거둔데 이어 2국에서도 중반에 대마를 잡아 승리를 굳혔으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강수를 던지다가 한때 비세에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막판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어 생애 첫 우승의 기쁨을 맛보았다.

세돌의 누나인 세나씨도 이화여대 재학시절 유명한 아마강자로 전국대회 우승도 했다.

그러나 한 집안에 프로는 두명이면 족하다며 다른 길을 선택했다. 비금도에서 온 이들 형제는 과연 우리 바둑계를 제패할 수 있을까. 바둑을 가르쳐준 아버지는 지난해 작고했다.

세돌의 형 차돌도 서울에 왔다. 3남2녀인 5남매는 한국기원 근처 왕십리에서 함께 살고있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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