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스트 강귀희씨가 밝힌 고속철 선정 뒷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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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경부고속철도 입찰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제기된 로비설의 의혹은 TGV 로비스트로 활약했던 강귀희(姜貴姬.64.사진)씨가 1998년 발간한 '로비스트의 신화가 된 여자' 라는 책자에서 그 윤곽이 일부 드러났다.

姜씨는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김영삼(金泳三) 정권으로 이어지며 프랑스의 TGV와 독일의 ICE 제작사 사이에 벌어진 치열한 로비전의 내막을 비교적 소상히 설명했다.

초대 미스코리아 출신인 姜씨는 37세 때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에서 한국식당 '르 쎄울' 을 운영하며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 등 프랑스 유명인사들과 교분을 맺었고, 그 인연으로 80년대 초부터 알스톰사를 위해 로비활동을 폈다.

姜씨는 현재 한국에서 건강식품을 판매하는 ㈜노이폼하우스의 대표를 맡고 있다.

姜씨의 TGV를 위한 로비는 83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유럽 7개국 순방 중 파리에 들렀을 때 시작됐다.

姜씨는 대통령 부인 이순자(李順子)씨에게 '9㎜짜리 진주목걸이에 블러디 피전이란 이름의 미얀마산 루비를 단 보석' 과 '다이아몬드를 박은 루비 반지' 를 선물, 全전대통령의 관심을 TGV쪽으로 유도했다.

고속철도사업 선정권을 넘겨받은 노태우 전 대통령은 미국 전 국무장관 슐츠의 로비에 힘입어 독일의 ICE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슐츠 전 장관은 盧전대통령의 방미뿐만 아니라 북방외교를 지원했던 인물이었다.

슐츠는 당시 미국 벡텔사의 회장으로 독일의 ICE가 선정될 경우 고속철도 기반시설 공사의 기본 설계 엔지니어링을 맡을 예정이었다.

姜씨는 경북여고 후배인 盧전대통령의 부인 김옥숙(金玉淑)씨를 찾아가 TGV의 낙찰을 부탁했다.

이 자리에서 金씨는 姜씨에게 "TGV가 아주 좋다던데…. 우리는 너무 돈이 없어요" 라고 말했다.

이에 姜씨는 알스톰사로부터 받을 에이전트 비용(총 수주금액 21억달러의 5%) 가운데 3%인 6천만달러(당시 환율 환산 4백80억원)를 내놓을 생각을 가졌다.

이후 고속철도 사업 결정권은 문민정부로 넘어갔다.

알스톰사는 5차 입찰을 앞둔 93년초 姜씨를 통해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정치자금을 제안했다.

그 연결고리를 맡은 사람은 C목사였으나 金전대통령의 거부로 무산됐다.

姜씨는 책에서 "6차 입찰까지 가는 진통을 겪은 것은 당시 고속철도공단 K단장, 슐츠 전 미국무장관, 국내 D그룹 K회장, 북방외교의 주역이었던 P모 전의원 등이 TGV선정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 이라며 로비 의혹을 제기했다.

알스톰사는 수주가 보장되지 않자 결국 총 입찰금액에서 2억달러를 깎고 응찰, 선정되게 됐다는 것이 姜씨의 설명이다.

姜씨는 자신이 받은 에이전트 비용과 사용처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고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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