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패러디 시집' 저작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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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문학에 있어서의 '패러디 기법' 은 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까다롭다.

사전식으로 간단하게 풀이하자면 '다른 작품을 우스꽝스럽게, 혹은 풍자적으로 변조한 작품' 이다.

확대 해석해서 남의 작품을 흉내 낸 것을 패러디의 범주에 포함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를 제외하면 일반적인 패러디 작품들은 창작으로 간주한다.

중세(中世)로망스의 패러디라 할 수 있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나 '오디세이' 의 서술 체계를 차용하면서 모든 문체적 규범들을 모방해 보이고 있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처럼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패러디 작품들도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인훈(崔仁勳) 같은 작가가 대표적이다.

그는 김만중(金萬重)의 '구운몽(九雲夢)' 과 박태원(朴泰遠)의 '소설가 구보씨의 1일' 의 동명 소설을 비롯, '서유기(西遊記)' '춘향뎐' 등 많은 패러디 작품으로 우리 현대문학사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특히 '구운몽' 은 원전(原典)의 유기적 세계관에 대한 패러디를 통해 현대의 상황을 진단하고 관찰하면서 이를 토대로 현대의 억압구조와 지배적 담론을 펼쳐보이는 독특한 방식을 구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인훈의 고차원적인 기법이 아니더라도 패러디는 지난 시대의, 혹은 당대의 권력구조나 사회체계 속에 내포된 억압적 특성이나 허위의식을 폭로하려는 예술가의 태도가 반영되게 마련이다.

풍자나 위트, 아이러니 따위가 자주 등장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예컨대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아킬레스가 축구 선수로, 혹은 그리스 신화 속의 여신인 헤라가 미인대회의 여왕으로 등장하는 따위가 그렇다.

우리나라에선 '춘향전' 의 이몽룡이 재벌 2세로, 춘향이 고급 호스티스로 등장하는 패러디 소설이 나온 적도 있다.

문학에 있어서의 패러디 기법이 시대상을 반영한다면 그 기법은 누가 행하느냐에 따라 내용과 형식에서 큰 차이를 보일 수 있다.

가령 어떤 상황을 패러디 기법으로 형상화했을 때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가 우선 감각적인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 기법이 얼마나 성숙해 있느냐 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한데 최근 대구의 한 여자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쓴 패러디 시들을 모아 시집으로 출판하려 하자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가 저작권 문제를 들고 나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소식이다(본지 5월 8일자 25면).

"제2차 저작물인 패러디에 대한 지적재산권도 원작자에게 속하기 때문에 허락을 받아야 한다" 는 것이다. 학생들의 작품에 원작의 숨결이 얼마나 살아있는지 알 수 없지만 패러디의 한 연습과정으로 받아들여도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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