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원조를 찾아서] 근대 기상관측 효시 인천관측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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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맥아더 장군 동상으로 유명한 인천 자유공원(응봉산). 인천기상대는 이 동상보다 더 높은 응봉산의 최정상에 자리 잡고 있다. 여기가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기상관측이 처음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1904년 일본은 개전이 임박한 러일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현 인천 중구청 뒤편 송학동에 임시관측소를 설치했다. 이어 1905년 1월 1일에는 대한제국 황실 재산이던 인근 응봉산 정상에 인천관측소(사진)를 신축해 이전하게 된다. 목조 2층에 210㎡ 규모의 이 근대적 기상관측소에는 당시로서는 첨단 장비인 풍력계·지동계·일조계·자동강우계·백엽상·증발계 등이 갖춰졌다.

시계가 귀했던 초기에는 관측소가 시민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도 했다. 낮 12시가 되면 산 위에서 대포를 쏘아 응봉산은 오포산(午砲山)으로 불리기도 했다. 포를 잘못 쏘아 부상당하는 일이 잦아지자 1931년 7월 사이렌으로 바뀌었다. 인천관측소는 1910년 8월에는 조선총독부 관측소로, 1939년에는 조선총독부 기상대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름은 바뀌었어도 1905년부터 1948년 정부 수립 때까지 전국의 관측소를 통할하고 일본 중앙기상대, 런던 그리니치 천문대 등과 기상정보를 교환하는 중앙기상대 역할을 했다.

1929년에는 인천관측소에 적도의실(赤道儀室)이 설치돼 천체관측의 업무도 추가됐다. 1974년 국립천문대가 발족되기 전까지 달력 편찬 등의 천문업무가 이곳에서 수행됐다.

초기에는 일기예보가 낮에는 깃발, 밤에는 전등으로 전달됐다. 풍향은 큰 삼각형 깃발을 이용해 동풍은 녹색, 서풍은 청색 등으로 표시됐다. 날씨는 사각형 깃발로 맑음은 흰색, 비는 청색 등으로 예보됐다. 밤에는 깃발 대신 여러 가지 색깔의 큰 전등을 내걸어 날씨를 알렸다.

라디오를 통한 기상 방송은 1928년부터 시작됐다. 1931년부터는 해상 날씨를 알려주는 어업기상방송도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정부수립과 함께 서울로 올라갔던 중앙기상대는 한국전쟁과 함께 다시 인천으로 기능이 옮겨졌다가 1953년 11월 서울로 돌아갔다.

인천=정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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