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취업 이렇게 뚫어라] 직원 50여 명 상하이 의류수출업체 정호석 팀장 성공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4면

상하이=한우덕 기자

지난달 24일 중국 상하이 시내 구베이(古北)의 한 허름한 사무실. 남녀 직원 네댓 명이 머리를 맞대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내년 봄 미국 남성복 패션 트렌드가 화제였다. 미니 수출전략회의인 셈이다.

“불경기에는 오히려 헐렁한 패션이 유행합니다. 이미 그런 쪽으로 오더가 많이 들어옵니다. 공장을 알아보세요.”

“역시 가격이 문제입니다.”

“상하이 근처를 고집하지 말고, 조금 멀지만 닝보(寧波) 쪽 공장에 주문을 하세요.”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회의를 주재한 사람에게 다가가 “취재차 왔다”고 하니 “어서 오세요”라며 반갑게 맞는다. 회의 때의 완벽하던 중국어가 금방 한국어 인사로 바뀌었다. 상하이의 의류수출 전문업체 뉴그린의 정호석(32사진) 팀장이 주인공이다.

직원 50여 명 남짓의 작은 회사에서 그는 6명으로 구성된 남성복팀에서 일하고 있다. 자재 구매에서 생산주문·가격결정·마케팅, 그리고 수출에 이르기까지 남성복 관련 업무 전체를 책임지고 처리한다.

지난 1년간 이 회사에서 일해온 정 팀장이 올해 수출한 물량은 약 250만 달러. 다른 팀보다 실적이 좋아 같은 급 팀장들보다 세 배 이상의 급여를 받고 있다. 구체적인 월급을 묻는 질문에 “같은 연령대의 한국 대기업 직원보다는 많을 것”이라며 웃었다.

그가 중국에 처음 온 것은 2005년. 당시 초봉으로 고작 3000위안, 한국 돈 40만원가량을 받았다. 귀국하겠노라 보따리를 싸고 푼 게 셀 수 없이 많았다. “나중에는 오기가 생기더군요. 완벽한 중국어를 위해 공부했고, 수출입 업무에 정통하기 위해 선배들을 쫓아다니면서 배웠습니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6개월 동안 필리핀으로 유학을 가기도 했습니다.”

중국 경제가 급부상하면서 중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중국 진출 투자업체들 역시 ‘준비된 중국통’들을 현지에서 뽑는다. 사진은 중국 경제 핵심 도시인 푸둥(浦東)의 야경. [중앙포토]


수출입 업무와 영어 지식을 갖춘 그는 1년 전 칭다오(靑島)에서 상하이로 왔고, 평범한 중국 회사에 도전했다. 그는 “부하 직원을 잘 다룰 수 있느냐가 중국 직장생활 성공의 관건”이라며 “업무에 정통하고 중국어에 능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중국에서 취업하기로 마음을 먹은 건 모교인 부산 신라대가 운영하고 있는 동북아비즈니스지원센터의 영향이 컸다. 3개월간 중국과 한국에서 중국어와 비즈니스 교육을 받은 뒤 현지기업(주로 한국투자기업)에 인턴으로 취업시키는 곳이다. 올해도 40여 명의 학생이 중국 비즈니스 인력 양성과정을 이수한 뒤 절반 정도가 중국 취업에 성공했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신라대 등 중국 취업연수과정 운영  

동북아비즈니스지원센터의 이권호 박사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중국 취업의 길을 뚫어주자는 차원에서 부산시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며 “중국 내 한국어 강사, 디자이너 등을 포함해 매년 70~80여 명의 학생을 배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신라대 학부를 졸업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동북아비즈니스센터로 ‘진학’해 해외 취업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고 말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하는 중국 취업연수과정도 일자리 찾기의 통로다. 현재 약 850여 명이 중국 현지에서 연수 과정을 밟고 있다. 상하이 시내 하이툰(哈一頓) 호텔 로비에서 만난 강희연(28)씨는 이 과정 졸업생. 한국에서 영양사로 일하던 그는 1년 전 ‘중국에 인생을 걸겠다’라는 각오로 상하이행 비행기를 탔다. 그의 한 달 월급은 약 5000위안, 약 85만원에 불과하지만 불평은 없다.

“월급으로만 보자면 있을 곳이 못 되지요. 그러나 저에게는 내일이 있잖아요. 지금은 한국 투숙객을 상대하는 정도지만 여기서 호텔 경영 노하우를 더 배워 언젠가는 중국 내 최고 수준의 호텔 매니저가 될 겁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