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벌꿀인줄 알았는데 설탕물…양봉업자 기소

중앙일보

입력

양봉업을 하는 정모(55)씨는 2001년 11월 경기도 용인시 자신의 거주지에 지하수를 끌어올릴 양수시설과 난방장치를 설치했다. 프로펠러가 부착돼 내용물을 휘저을 수 있는 교반기도 구입했다.

정씨는 교반기에 지하수를 채운 뒤 설탕 300포(1포당 15kg)를 넣었다. 의료연구용 시약인 인베르타제도 첨가했다. 이어 프로펠러가 돌아가며 설탕과 시약을 고루 섞었다. 30℃ 온도에서 한 달 정도의 숙성기간을 거치자 설탕물은 누렇고 탁하게 변해 있었다. 설탕물이 ‘가짜 벌꿀’로 둔갑한 것이었다.

정씨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생산한 가짜 벌꿀을 지난해 11월까지 7년 동안 제조해 판매했다. 중간판매상인 김모(51)씨 등은 정씨로부터 납품받은 가짜 벌꿀과 진짜 벌꿀을 섞어 식품ㆍ제과회사와 대형마트 등에 진짜 벌꿀인 것처럼 속여 유통시켰다. 소비자들은 건강을 생각해 벌꿀을 구입했지만 실은 설탕물을 먹게 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 안상돈)는 27일 가짜 벌꿀 1만6000여 드럼(4700톤)을 만들어 78억원 상당을 받고 유통시킨 혐의(식품위생법 위반 등)로 정씨를 구속기소했다. 또 중간판매상 김씨 등 4명은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양봉업자들이 의료용 시약을 섞은 가짜 벌꿀을 만들어 판매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이 시약을 대량으로 구입한 업자들을 중심으로 수사에 나섰다. 이 시약을 식용으로 쓰기 위해서는 식약청의 승인을 받아야 했지만 정씨는 의료용으로 수입한 시약을 구입해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에 따르면 천연벌꿀보다는 벌에게 설탕물을 먹여서 생산한 사양벌꿀이 압도적으로 많이 유통된다고 한다. 전자파는 꿀벌의 귀소 본능을 방해하고, 기후 변화로 꿀을 채취할 식물들이 감소한게 원인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딸리자 '가짜 벌꿀' 생산을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씨는 설탕물을 숙성시켜 중간판매상들에게 1드럼(288kg)당 40만~55만원에 넘겼다고 한다. 60만~65만원인 사양벌꿀보다 저렴한 가격이었다. 검찰은 가짜벌꿀이 유통된 대형마트 등에 벌꿀의 회수를 요청했다. 또 관련 부처를 상대로 인베르타제를 ‘수입물품 유통이력관리 물품’으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키로 했다.

박유미<기자yumip@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