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인후초교 3가정 자녀교육 품앗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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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전주 인후초등학교 3학년 홍민.원석.동혁(10)이는 매주 목요일이면 한의사인 홍민이 아빠(秋景洙.39.전주시 우아동)에게 천자문을 배운다.

신문에 나오는 한자나 단어 등을 쉬운 예를 들어 머리 속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해줄 뿐 아니라 세상 이치도 가르쳐 줘 좋다.

월요일 오후 8시부터 1시간30분동안은 원석이네 집에 원석이 아빠(成仲基.39.삼양사 차장)와 지렛대의 원리나 카메라의 구조 등 과학 공부를 한다. 수학도 잘 모르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이 때 해결한다.

일요일의 선생님은 동혁이 아빠(金亮辰.39.식품 대리점 운영). 학교 운동장에 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면서 체력을 기른다.

세 친구의 아빠가 과외 품앗이를 시작한 것은 지난 3월 초. 아들들이 같은 동네, 같은 반 친구로 친하게 지내 부모들도 서로 알게 됐고, 철도박물관.공룡발자국을 보러 대천.사천 등을 같이 다녀오면서 이웃사촌으로 발전했다.

아이들 교육을 얘기하다 보니 사교육비가 너무 많이 나간다는 데 공감, 부모들이 품앗이 과외를 하자고 뜻을 모았다. 과목은 지덕체(智德體)의 격에 맞춰 과학.한문.체육으로 정했다.

단순한 지식 전달에 그치지 않고 인성을 길러주고 세상사의 이치를 깨닫도록 노력한다는 원칙도 만들었다.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한 아이가 일기장에 "일천 천(千) 밑에 입 구(口)가 붙어 혀 설(舌)자가 생겼다는 것을 배웠다.

좋고 나쁜 온갖 말을 다 할 수 있으니 앞으로 혀를 조심해야겠다" 고 썼던 것. 일기를 본 담임선생님도 "참 잘 가르치고 있다" 며 부모에게 전화를 했다.

홍민이는 "전에는 학원을 가기 싫어도 억지로 다녔으나 아빠들한테서 배우니까 공부가 재미있어져 이제는 과외시간이 기다려진다" 고 말했다.

세집의 과외비 부담도 크게 줄었다. 지난해에는 과학.한문.글쓰기.피아노.스케이트 등의 과외에 한 달에 20만~30만원씩 지출했지만 이제는 아예 없거나 거의 없어졌다. 또 아버지들은 술 등으로 낭비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가장 역할까지 충실해지는 등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고 있다.

秋씨는 "품앗이 과외에 끼워달라고 하는 사람이 많지만 과목이 많아지면 아이들이 힘들어져 거절하고 있다" 며 "이같은 모임이 많아져 사교육비라는 단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전주〓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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