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 ‘스노보드 월드컵’ 뜨거운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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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사진] 명물인가 흉물인가 … 광화문광장 한복판에 높이 34m 스노보드 점프대

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길이 100m, 높이 34m(아파트 13층에 해당)의 대형 스노보드 점프대를 설치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7억원이 투입되는 점프대는 복원 공사 중인 광화문과 세종대왕 동상 사이 ‘플라워 카펫’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다. 이곳에선 ‘스노보드 빅에어 월드컵’ 대회 등 각종 행사가 11~13일 열린다.

김태성 기자

7일 오후 1시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뒤편 ‘플라워 카펫’이 있던 자리에 거대한 경사형 구조물을 세우는 작업이 한창이다. 인부 4~5명이 경사로 위에서 흰색 포대 수십 개를 풀어 얼음가루를 뿌리고 있다. 높이 34m(아파트 13층에 해당), 길이 100m의 이 구조물은 13일 열리는 ‘스노보드 빅에어 월드컵’ 때 사용될 점프대다.

이 스노보드 대회를 앞두고 광화문광장의 사용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이번 대회의 예산은 모두 17억원으로 서울시 5억원, 행사 참여 기업들이 12억원을 마련했다. 점프대 설치비는 7억원이다. 서울시 강철원 홍보기획관은 7일 “스노보드 월드컵은 도심에서 열리기 때문에 더 주목받는 대회”라며 “대회를 통해 해외에 서울의 랜드마크인 광화문광장이 자연스럽게 알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스노보드 점프대 설치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건축가 민현식(62)씨는 “광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곳을 쓰는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 자연스럽다”며 “인위적 행사나 관청 주도형 이벤트는 광장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디자인 평론가 최범(52)씨는 “대한민국 정궁(경복궁) 앞에 놀이시설을 만드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광장을 서울시 홍보시설로 쓰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서울시 윤영석 마케팅담당관은 “런던·스톡홀름·파리·모스크바 등 세계 유명 도시들도 해외 마케팅 차원에서 이 대회를 치렀다”며 “일본 후지TV, 미국 폭스스포츠, 유로스포츠 등 전 세계 10개 방송사에서 대회를 중계 방송할 예정이어서 경복궁·광화문·북한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서울의 전경이 대회와 함께 전 세계에 소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장을 찾은 시민들 사이에도 찬반이 엇갈렸다. 전정오(57·서울 종암동)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문화 광장에 스노보드 점프대가 생기는 것은 생뚱맞고 광장 설립 취지와도 어울리지 않는다”며 “광장에서 잘 보이던 경복궁 일대 전경을 점프대가 가린 것도 아쉽다”고 지적했다. 대학생 임채학(28·한국외대)씨는 “외국 유명 도시들은 다양한 이벤트로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며 “권위적이던 태극기가 2002 월드컵을 통해 응원 도구와 디자인 도구가 됐듯 스노보드 대회를 계기로 시민들이 광화문광장을 더 친숙하게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스노보드 빅에어 월드컵=국제스키연맹(FIS)이 주관하는 스노보드 라이더들의 월드컵으로 2001년 첫 대회 이후 매년 열리고 있다. 점프대에서 도약 후 점프·회전·착지 등의 과정을 점수로 평가한다. 서울시는 올 5월 국제스키연맹에 대회 유치를 신청해 9월에 개최지로 확정됐다.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이번 대회에는 전 세계 유명 스노보드 선수 60여 명이 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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