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군 일본 자위대] 上.적극적 안보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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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일본의 방위개혁은 떠들썩하게 추진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개혁과 달리 한꺼번에 벌어지고 있다. 안으로는 유사법제 정비와 방위청의 국방성 승격이, 밖으로는 자위대 활동반경 확대가 동시 다발적으로 모색되고 있다.

첨단장비 도입과 새 부대 창설 계획도 줄을 잇는다. 방위청 청사 이전을 계기로 일본의 안보 전략과 군으로 탈바꿈하는 자위대를 세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8일 새로 문을 여는 도쿄 이치가야(市ケ谷)의 방위청 청사는 전체 부지면적이 현 롯폰기(六本木)청사의 세 배가 넘는 23만㎡나 된다. 일본의 정부청사 중 최대규모다.

공사비만 약 2천5백억엔(약 2조5천억원). 비상시에는 A동의 중앙지휘소로 모든 정보가 집약되는 등 하이테크 설비를 갖췄다.

새 방위청 청사가 들어선 부지의 내력도 심상치 않다. 5개동 중 A동 터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 육군사관학교 본부였다가 침략전쟁의 지휘본부인 육군 대본영으로 사용됐다.

전후에는 전범들을 응징한 극동국제군사재판(전범재판) 법정으로 쓰였던 곳이다. 이 곳에서 1970년 우익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가 자위대 궐기를 외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장소인 육상자위대 대강당은 이번 신축과정에서 기념관으로 남겨두었다. 따라서 새 청사 이전엔 위기관리 강화나 정보 효율화를 꾀한다는 말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는 셈이다.

보수 본당인 자유당과 자민당 우파가 방위청의 국방성 승격에 팔을 걷어붙인 것도 크게 보면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법.제도의 개혁도 한창이다. 전쟁이나 위기시 정부.자위대.경찰.지방자치단체.국민을 하나로 묶기 위한 유사법제 정비가 그것이다. 개인과 자치단체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어 국민의 거부반응이 강하지만 정부의 의지는 단호하다.

정부는 이미 방위청 소관 법령(1분류)과 방위청외 중앙정부 법령(2분류)의 문제점을 검토했다. 유사시 물자이용.토지수용 등에 관한 것들로 77년에 연구를 시작했던 것들이다.

소관 부처가 불분명한 주민보호.피난.포로.전파사용(3분류)은 내각 안전보장 위기관리실에서 검토 중이다. 모리모토 사토시(森本敏) 다쿠쇼쿠(拓殖)대 교수는 "먼저 제1, 2분류가 법제화될 가능성이 크다. 유사시 미군의 행동,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도 과제" 라고 말했다.

공작선 침투 등 준(準)유사시를 상정한 자위대의 교전수칙(ROE) 제정작업도 이미 시작됐다. 가와라 쓰토무(瓦力)방위청장관은 "현재의 법.제도로 나라를 지키라고 하기가 어렵다" 고 밝힌 바 있다. 공작선에 위해사격이 가능하도록 법 개정에 나선 것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엔 주변사태법 등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관련법을 마련했다. 자위대는 올해 초 이미 주일미군과 한반도 비상시를 상정한 도상(圖上)훈련을 벌였다.

유엔평화유지군(PKF)과 다국적군 병참지원 참가가 합법화하면 자위대는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외에 웬만한 국제 분쟁에 참가할 수 있게 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보 질서를 주도하려는 노력도 무시할 수 없다. 2국간 안보대화나 6자회담 구상은 대표적이다.

올해 초 총리 자문기관인 '21세기 일본의 구상' 이 집단적 자위권에 관한 논의의 필요성을 지적한 것은 역내 집단안보체제 구축의 터닦기라는 색채가 짙다. 일본내 국가주의 흐름이 이어지고, 아.태지역의 안보 비용을 줄이려는 미국의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적극적 안보론의 열기는 식지 않을 것이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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