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간 뜨겁게 달아오를 중국 시장이 나를 불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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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볼턴 피델리티인터내셔널 투자 부문 대표

“가족과 자선사업, 동요 작곡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싶다.”
영국의 ‘피터 린치’ ‘투자세계의 해리 포터’ 등으로 불린 앤서니 볼턴(59) 피델리티인터내셔널 투자 부문 대표는 2007년 5월 중앙SUNDAY와 단독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해 말, 그는 스페셜시추에이션(Special Situation) 펀드의 수석 펀드매니저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랬던 그가 지난달 말 돌연 펀드매니저 복귀를 선언했다. 은퇴를 발표한 펀드매니저가 복귀를 선언한 것은 아주 드물다. 미국 쪽 피델리티의 마젤란펀드를 운용했던 피터 린치는 1990년대 초에 물러났다. 현재 리서치 컨설던트라는 명함을 들고 다니기는 하지만 자선사업에 거의 올인하다시피 하고 있다. 펀드매니저들이 은퇴를 번복하지 않는 배경에는 자산운용의 힘겨움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이는 린치가 현역 시절 한 인터뷰에 잘 드러난다. “신경이 곤두서 사흘 동안 잠을 5시간밖에 자지 못한 적도 있다. 글로벌 시장의 요동이 내 잠을 앗아 갔다.”

볼턴도 “자산운용이 주는 긴장감을 즐기기도 했지만 많이 지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60세도 되지 않은 그의 머리는 거의 반백이나 다름없다. 그를 다시 치열한 현장으로 끌어낸 것은 중국이다.


그는 내년 1월 중에 중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가전·자동차, 소비재 등을 생산하는 기업에 집중하는 펀드를 설정할 예정이다. 중국인들의 소비 욕구가 분출하기 시작할 것으로 본 베팅이다. 그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000~5000달러 선을 넘어서면 각종 소비가 가파르게 증가한다”며 “현재 중국의 1인당 GDP가 3500달러이니 2011년께 그 문턱을 넘어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볼턴은 이른바 뜰 종목을 찍는 펀드매니저(Stock Picker)다. 특정 지수의 편입 종목을 일단 사들여 시장의 수익률과 비슷하게 가는 이른바 방어적이고 보수적인 펀드매니저들과는 다르다. 시장보다 빨리 수익력이나 경쟁력, 브랜드 파워를 갖춘 기업을 골라 사들인 뒤 시장이 간파할 때까지 기다리는 방식으로 고수익을 좇는 공격적인 펀드매니저다. 그는 중국에서도 이 특기를 써먹을 요량이다.

中 경제 불투명해 복귀 성공할지 의문
그의 복귀는 중국 버블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는 와중에 이뤄졌다. 중국은 올해 상반기 1조5000억 달러 이상을 풀었다. GDP의 34%가 넘는 돈이다. 더욱이 이 돈은 정부의 재정지출이 아니라 중앙은행에서 시중은행 창구를 통해 풀려 나간 돈이다. 전반적인 인플레이션이나 자산 거품으로 이어지기 십상인 상황이다.

전문가들의 경고도 이어졌다. 베스트셀러인 『세계 경제의 몰락-달러의 위기(The Dollar Crisis)』 지은이인 리처드 던컨은 최근 한국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중국도 두바이처럼 최근 몇 년 동안 대규모 건축과 은행 대출을 바탕으로 한 성장 전략을 추구해 부실을 키워 왔다”며 “후유증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 모건스탠리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앤디 시에도 “현재 중국 경제는 부동산 버블로 부양되고 있으나 가격이 너무 올라 위험하다”며 “성장률은 지금이 정점이어서 단기적으로는 경제가 둔화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들보다 한술 더 떠 대붕괴를 예고한 사람도 있다. 베이징대 경영대학원 교수인 마이클 페티스는 최근 중앙SUNDAY와 인터뷰에서 “87년 일본이 세계 경제 위축 와중에 돈을 풀어 거품을 일으켰듯 중국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며 “조만간 중국도 일본처럼 거품과 파열의 블랙홀에 빨려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볼턴은 짧지만 아주 인상 깊게 응수했다. 그는 차이나 버블이 부풀어 오를지는 알 수 없지만 몇 년 동안 이어질 주가 상승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아래 칼럼). 거품이 파열하기 직전에 탈출할 자신감이 엿보이는 발언이다. 그의 경력에 비춰 허풍은 아닌 듯하다. 그는 1979~2007년 28년 동안 영국의 스페셜시추에이션 펀드를 운용해 연평균 수익률 20% 정도를 ‘꾸준히’ 달성했다. 특히 그는 역발상 투자자(Contrarian)다. 대중이 거품 열기에 들떠 있을 때 그는 냉정했고, 반대로 대중이 두려움에 떨 때 그는 황소로 돌변했다. 실제 세계 증시가 급등한 2007년 그는 몰락을 경고했고, 패닉에 빠진 지난해 11월 주식 매수를 부르짖었다.

그러나 볼턴이 중국에서도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볼턴처럼 철저하게 기업 실적과 비즈니스 모델, 경영자 능력 등을 분석해 저평가 종목을 고르는 펀드매니저는 기업 투명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중국에서 실력 발휘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유럽의 투자자문사들이 그의 복귀에 아주 후한 점수를 주고 있지 않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진국에서 투자 자문사는 펀드 선택에 영향력이 막강하다.

강남규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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